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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바

알로바

Aloba

알리 악바르 샤푸르자만

페르시아 출신, 하피즈 낭송과 식사 관리, 새로운 삶 동반자

1916년 7월 12일 ~ 2002년 8월 13일
이란 야즈드 (당시 페르시아) → 인도 푸네 인락스 병원

전기

알리 악바르 샤푸르자만은 메헤르 바바가 손수 지어 준 '알로바'라는 이름으로 바바를 따르는 이들 사이에 널리 알려졌으며, 만달리 가운데서도 유난히 뜨거운 사람이었다. 몸집은 작았지만 스승을 향한 사랑은 누구보다 컸다. 그를 아는 이들은 메헤르 바바의 신성에 대한 흔들림 없는 확신에서 우러나온 불같은 기질을 지녔다고 그를 묘사했다. 그는 메헤르아쉬람 시절의 학생 가운데 훗날 바바의 영구 상주 만달리가 된 유일한 사람이었고, 바바와 함께 새로운 삶의 여정을 떠난 남성들 가운데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이었다.

알로바와 메헤르 바바의 인연은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는 바바 집안의 부계와 모계가 모두 비롯된 조상의 고향, 이란 야즈드에서 태어났다. 1923년 일곱 살의 알리 악바르는 삼촌을 따라 인도로 건너왔고, 평생 자기 정체성의 일부로 남을 오랜 페르시아 땅을 떠났다. 그는 4년 동안 봄베이의 이란 식당에서 일하다가, 열한 살 때 인연이 닿아 메헤라바드로 와서 소년들을 위한 메헤르아쉬람의 일부인 하즈랏 바바잔 학교에 들어갔다.

이란 출신의 어린 학생은 1927년 메헤르 바바를 처음 만났고, 그 순간부터 그의 삶은 되돌릴 수 없이 달라졌다. 그러나 영원한 제자가 되기까지의 길은 멀리 돌아가야 했다. 1928년 삼촌이 찾아와 그를 봄베이로 데려가 일을 시키겠다고 고집했다. 알로바는 그토록 깊이 사랑하게 된 스승과 헤어지게 되어 가슴이 미어졌다. 그 뒤 여러 해 동안 소년은 봄베이의 이라니 찻집에서 계산원으로 일하며 바바를 그리워했다.

1935년, 섭리가 길을 열었다. 봄베이의 한 식당에서 출납원으로 일하던 알로바는 어느 날 가게에 들어온 바바의 제자 바이둘을 알아보았다. 이 우연한 만남으로 바바를 향한 그리움이 다시 타올랐다. 어느 날 밤 그는 일을 그만두고 바바의 다르샨을 받으러 아흐메드나가르로 갔고, 그곳에서 라오사헵에게 바바가 나식에 머물고 있다는 말을 듣고 나식으로 찾아갔다. 사로쉬 모터 웍스 사무실에서 바바를 만난 그는 그 발 앞에 엎드렸다. 바바는 그를 봄베이로 돌려보내며 부를 때마다 오라고 했고, 그 뒤로 그는 보통 매달 1일에 바바를 만났다.

트러스트 메헤르에 따르면 알로바는 훗날 자신의 찻집을 운영했고, 바바가 축복한 뒤로 가게는 번창했다고 한다. 그러나 물질적 성공은 스승의 부름에 견줄 수 없었다. 1949년 6월 그는 봄베이에서 와서 메헤라자드의 만달리와 영구히 함께 살기 시작했다. 1949년 10월 16일, 알로바는 바바와 몇몇 선택된 동반자들과 함께 새로운 삶에 나섰다. 바바가 '완전한 무력함과 절망의 삶'이라 부른, 일부러 집 없이 떠돌며 모든 것을 버리는 시기였다. 거의 여덟 달 동안 알로바는 이 독특한 영적 실험 속에서 스승과 함께 걸었다. 1950년 중반 그는 독립 생활을 위해 새로운 삶을 떠났고 이후 '옛 삶'으로 분류되어 봄베이에서 살았다. 1949년 새로운 삶 중 모라다바드에서, 일행의 숙소가 무슬림 출입 금지 구역이었는데 누군가 '알리 악바르'라는 이름을 듣고 그를 무슬림이라고 몰아세웠다. 그래서 바바가 그의 이름을 알로바로 바꾸었고, 이 이름이 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1952년 9월 바바는 그를 봄베이에서 불러 대중 다르샨 순회에 합류하게 했고, 그 뒤로 그는 바바의 상주 만달리로 남았다. 그 뒤 세상을 떠날 때까지 50년 동안 알로바는 주로 메헤라자드에 살며 스승을 섬겼고, 훗날에는 메헤르 바바의 자취를 찾아오는 수많은 순례자들을 맞이했다. 바바의 신성을 열렬히 외치던 그의 모습은 메헤라자드를 찾은 이들 사이에서 전설이 되었다.

알로바의 마지막 순간은 그의 헌신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고스란히 보여 준다. 2002년 8월 초, 86세의 그는 넘어져 고관절이 부러졌다. 척추 마취로 진행된 수술 내내 그는 의식이 깨어 있었다. 그는 평생 붙들어 온 진실을 큰 소리로 거듭 외쳤다. '바바는 하나님이십니다!' 의료진이 조용히 해 달라고 하자 그는 그러겠다고 했다. 그러나 수술이 끝나는 순간 그의 마지막 말이 울려 퍼졌다. '제이 바바!' 곧바로 혈압이 떨어지고 심장이 멎었다. 그는 2002년 8월 13일 오후 1시 30분, 푸네의 인락스 병원에서 폐색전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알로바는 하부 메헤라바드의 남성 묘지, 에루치 제사왈라 곁에 묻혔다. 그는 화장하지 않고 매장되었다. 몸집은 작았지만 바바의 사랑 안에서 거인이었던 그는, 그를 아는 모든 이들의 가슴에 특별한 자리를 남겼다.

사진 갤러리(28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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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연표

1916

메헤르 바바 집안의 조상 고향인 이란 야즈드(당시 페르시아)에서 태어남

1923

일곱 살에 삼촌을 따라 이란에서 인도로 건너옴

1927

메헤르 바바를 처음 만남. 메헤라바드의 하즈랏 바바잔 학교(소년들을 위한 메헤르아쉬람)에 입학

1928

삼촌이 찾아와 봄베이로 데려가 일을 시키겠다고 고집함. 알로바는 스승과 헤어지게 되어 가슴 아파함

1935

일하던 봄베이 식당에서 바바의 제자 바이둘을 알아봄. 얼마 뒤 일을 그만두고 아흐메드나가르를 거쳐 나식에서 바바를 만나 그 발 앞에 엎드림. 이후 매달 1일에 바바를 만남

1949

봄베이에서 와서 메헤라자드의 바바 만달리와 영구히 함께 살기 시작함

1949

메헤르 바바와 함께 새로운 삶의 여정에 나섬

1950

1950년 중반 새로운 삶을 떠나 봄베이에서 독립 생활을 함. 그해 10월 옛 삶으로 분류됨

1952

9월 봄베이에서 부름을 받아 바바의 대중 다르샨 순회에 합류. 이후 바바의 상주 만달리로 지냄

2002

오후 1시 30분 푸네 인락스 병원에서 고관절 수술 중 세상을 떠남. 마지막 말은 '제이 바바!'

말씀

“

나의 명령을 실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그에 비하면 내가 당신의 발 앞에 엎드리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1949년 8월 18일 하부 메헤라바드. 알로바가 바바의 뜻을 어기고 그의 발을 만졌고, 바바가 답례로 알로바의 발을 만지려 몸을 굽히자 알로바가 펄쩍 뛰어올랐다가 바바의 손 위로 떨어져 손을 다치게 했다. 그날 늦게 바바는 그를 용서하며 이렇게 말했다.)

“

이제 먹고, 마시고, 즐기십시오! 15일부터 우리의 카르발라 생활이 시작됩니다!

(1952년 11월 초, 11월 15일에 시작될 '불 같은 자유로운 삶' 순회를 앞두고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던 날, 바바가 앞으로 닥칠 고생을 두고 알로바를 놀리며 한 말.)

“

나는 속에서 타고 있습니다! 당신의 부주의 때문에 나를 겉에서도 타게 하지 마십시오.

(1952년 11월 28일, '불 같은 자유로운 삶' 중 하미르푸르에서 델리로 가는 열차 안에서 알로바가 짐을 정리하다 실수하자 바바가 꾸짖은 말.)

“

왜 자꾸 나를 빤히 쳐다봅니까? 나를 쳐다보지 마십시오! 내가 여기 올 때마다 당신은 늘 나를 쳐다봅니다.

(1957년 7월 메헤라자드. 만달리 홀에서 알로바가 바바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자 바바가 자기를 빤히 쳐다보지 말라고 금하며 한 말.)

“

가서 한 달 동안 거기 머무르십시오. 당신은 날마다 나를 화나게 하고 있는데,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짐을 소달구지에 싣고 그 달구지를 타고 아흐메드나가르로 가십시오. 거기서 곧바로 기차를 타고 봄베이로 떠나십시오. 한 달 뒤에 당신을 다시 부르겠습니다.

(1957년 12월 메헤라자드. 바바 앞에 나오지 말라는 명령을 받고도 알로바가 날마다 숨어서 바바를 엿보자, 바바가 그를 한 달 동안 봄베이로 보내며 한 말.)

“

나를 조금이라도 도울 수 없습니까? 당신은 나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내 일을 도우십시오!

(1958년 9월 메헤라자드, 바바의 은둔 기간. 홀에서 더 멀리 앉게 된 알로바가 또 곁눈질하다 들키자, 바바는 그를 꾸짖고 용서한 뒤 이렇게 간청했다.)

“

알로바, 나는 당신에게 천 번도 넘게 말했습니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하고, 당신의 분별이나 판단을 쓰지 마십시오. 내 명령을 거슬러 그렇게 하면 스스로 곤경에 빠집니다.

(1958년 메헤라자드. 스승의 지시보다 자기 판단을 믿다가 물에 빠져 죽은 샴스-에-타브리즈의 제자 이야기를 알로바에게 들려준 뒤 바바가 맺은 말.)

“

내가 시키지 않은 일은 하지 마십시오. 설령 뱀이 나를 물더라도, 내가 부르지 않는 한 도우러 와서는 안 됩니다. 내가 의자에서 떨어져도, 내가 부르지 않는 한 오면 안 됩니다. 누가 와서 나를 공격해도, 총을 쏘든 칼로 찌르든, 불리지 않는 한 와서는 안 됩니다.

(1958년 메헤라자드. 바바가 다른 사람에게 시킨 일까지 알로바가 달려가 해 버리곤 하자 바바가 그를 나무란 말.)

“

자파를 멈추고 여기 앉아 계속 나를 바라보십시오. 계속하십시오! 내 기쁨은 제쳐 두고 당신 자신을 기쁘게 하십시오!

(1958년 메헤라자드. 알로바가 기원문을 반복하도록 정해진 시간은 바바가 다른 만달리와 홀에 있는 때여서 그는 바바 곁에 있을 수 없었다. 바바가 그를 부르자 그는 소리 내어 반복하며 왔고, 바바는 나무라는 뜻으로 이렇게 말한 뒤 자기 기쁨만 생각한다며 그를 꾸짖었다.)

“

아름다운 여왕이 한 명 있는데, 그녀가 길가의 나병 환자 거지를 만난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 그러다 우연히 여왕을 본 그는 그녀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가 여왕을 사랑할 권리는 있으며, 육체적인 불행이 그녀를 사랑하는 데 장애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가 여왕을 껴안고 싶어한다면, 여왕이 그것을 좋아하겠습니까? 그리고 거지가 여왕에게 그런 식의 사랑을 품어야 하겠습니까? 반대로 그가 여왕의 행복만을 늘 생각하며 사랑을 깊게 한다면, 그의 처지를 가엾게 여긴 여왕이 언젠가 그를 눈여겨보고 돕기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1958년 10월 메헤라자드. 바바 앞에서 실수하지 않도록 방에 머물라는 지시를 받은 알로바가 바바를 보지 못해 괴로워하자, 바바가 그를 불러 위로하며 들려준 비유.)

“

오늘부터 이 정글리에게 영어를 가르치십시오!

(1960년 무렵. 에루치가 영어로 읽어 준 편지를 카카가 알아듣지 못했다고 하자, 만달리를 서로 부딪치게 하곤 하던 바바가 알로바에게 카카를 가르치라고 맡기며 한 말.)

“

다시는 그러지 마십시오! 언제나 다른 이들의 기쁨이 아니라 내 기쁨에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1968년 푸나 구루프라사드, 바바의 은둔 중. 문을 지키던 알로바가 찾아온 여인들에게 이튿날 아침 바바를 엿볼 방법을 일러 주자, 바바는 격노하여 그를 내보냈다가 다시 불러 용서하며 이렇게 경고했다.)

주요 이야기

나식에서의 재회

오랜 이별 끝에, 봄베이의 한 식당에서 출납원으로 일하던 알로바는 가게에 들어온 바바의 제자 바이둘을 알아보았다. 어느 날 밤 그는 일을 그만두고 아흐메드나가르로 떠났고, 그곳에서 다시 나식에 있던 바바를 찾아갔다. 사로쉬 모터 웍스 사무실에서 스승을 만난 그는 그 발 앞에 엎드렸다. 바바는 그를 봄베이로 돌려보내며 부를 때마다 오라고 했고, 그 뒤로 그는 보통 매달 1일에 바바를 만났다. 이 만남으로 바바와 알로바의 인연은 새로워졌고, 그는 마침내 만달리에 영원히 합류하게 되었다.

새로운 삶의 여정

1949년 10월 16일, 알로바는 바바와 몇몇 선택된 동반자들과 함께 바바가 '완전한 무력함과 절망의 삶'이라 부른 길에 나섰다. 거의 여덟 달 동안 그들은 일부러 집 없는 탁발 수행자가 되어 세상의 모든 인연을 끊고 떠돌았다. 1950년 중반, 열병과 고된 노동으로 몸이 약해진 알로바는 사타라에서 바바에게 독립 생활로 옮겨 달라고 청해 봄베이로 돌아갔고, 그해 10월 마하발레슈와르 모임에서 '옛 삶'으로 분류되었다. 훗날 그는 새로운 삶에 동행한 남성들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가 되었다.

마지막 선언

2002년 8월 초, 86세의 알로바는 넘어져 고관절이 부러졌다. 척추 마취로 진행된 수술 내내 그는 의식이 깨어 있었다. 수술실이었지만 그는 큰 소리로 거듭 외쳤다. '바바는 하나님이십니다!' 의료진이 조용히 해 달라고 하자 그는 그러겠다고 했다. 그러나 수술이 끝나는 순간 그의 목소리가 마지막으로 울려 퍼졌다. '제이 바바!' 곧바로 혈압이 떨어지고 심장이 멎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알아 온 진실을 외치며 살았고,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축복받은 찻집

트러스트 메헤르에 따르면 1935년 바바와 다시 만난 뒤 알로바는 봄베이로 돌아가 마침내 자신의 찻집을 열었고, 바바가 가게를 축복하자 장사가 번창했다고 한다. 『로드 메허』에는 그가 식당 출납원으로 일했고, 새로운 삶 이후에는 월리의 다이아몬드 레스토랑 지배인으로 일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어떤 일을 했든 물질적 성공으로는 그의 영적 갈망을 채울 수 없었다. 1949년 6월 그는 만달리와 함께 살러 왔고, 1952년 9월 바바가 그를 봄베이에서 다시 부르자 이번에도 망설임 없이 일을 두고 떠났다.

야즈드와의 인연

알로바가 태어난 이란(당시 페르시아)의 야즈드는 메헤르 바바 집안의 부계와 모계가 모두 비롯된 조상의 고향이었다. 이 땅의 인연은 더 깊은 영적 유대를 상징했다. 알로바는 아바타의 혈통을 길러 낸 바로 그 땅에서 왔고, 이는 이미 뜨거운 그의 헌신에 또 하나의 깊이를 더했다.

영상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