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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 K. 이라니

아디 K. 이라니

Adi K. Irani

아디 카이쿠쉬루 이라니

바바의 공식 비서, 대외 연락 창구, 트러스트 창립 이사

1903년 9월 4일 ~ 1980년 3월 4일
인도 마하라슈트라 아흐메드나가르 → 인도 안드라프라데시

전기

아디 카이쿠쉬루 이라니는 메헤르 바바의 막내 동생 아디 S. 이라니와 구별하기 위해 "아디 시니어(Adi Senior)"라고 불렸으며, 50년 넘게 메헤르 바바의 비서이자 주요 대변인으로 봉사했다. 1903년 9월 4일 인도 아흐메드나가르에서 카이쿠쉬루 사로쉬 이라니(존칭으로 칸사헵이라 불림)와 굴마이 이라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디는 영적인 삶에 깊이 헌신한 집안 출신이었다.

이라니 집안의 영적 인연은 메헤르 바바를 만나기 전부터 이어져 왔다. 아디의 부모는 바바를 아바타로 알아보기 전, 메헤르 바바의 다섯 완전한 스승 가운데 하나인 우파스니 마하라지를 따르던 헌신자였다. 이러한 집안의 헌신은 결국 온 가족이 메헤르 바바의 작업에 깊이 관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디는 판치가니 고등학교를 마친 뒤 푸나의 데칸 칼리지에 진학했다. 메헤르 바바와의 인연이 크게 깊어진 것은 이 대학 시절이었다. 제자들의 영적 성장만큼 생활의 안녕도 세심히 챙기던 바바는, 추종자 한 사람을 통해 아디가 더 좋은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마련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맛있는 음식을 유난히 좋아하던 아디의 취향을 헤아린 이 배려는 그를 메헤르 바바의 초기 측근들 곁으로 한층 가까이 이끌었다.

어느 날 저녁 바바의 오두막에서 스승은 아디에게 영적 삶의 자세를 정해 줄 가르침을 주었다. "당신의 행동이 당신의 의무를 따르게 하십시오. 당신의 의무는 대학에서 부지런히 공부하면서 동시에 마음과 가슴을 내게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 삶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나를 생각하는 것임을 늘 기억하십시오." 아디가 공부하는 동안에도 바바를 생각해야 하는지 묻자, 스승은 특유의 지혜로 답했다. "공부할 때는 나를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시간이 날 때는, 사랑하는 이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듯 나를 기억하며 온 주의를 내게 기울이십시오. 중요한 것은 내면의 접촉입니다."

아디의 삶에 결정적인 순간이 찾아온 것은 바바가 그와 단둘이 집 뒤편으로 걸어가 우물가의 돌 위에 앉았을 때였다. 그곳에서 바바가 물었다. "내가 누구인지 압니까?" 아디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우파스니 마하라지의 수제자이신 줄은 압니다. 그 이상은 모릅니다." 그러자 바바는 아디의 앞날에 대해 깊은 말을 했다. "오늘은 내가 누구인지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반드시 알게 될 것이며, 당신의 이름이 온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앞날은 나의 작업에서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나의 사랑과 내 지시에 대한 당신의 순종으로, 당신은 나의 작업에 걸맞은 도구가 될 것입니다." 바바는 나중에 "나는 당신을 비베카난다처럼 만들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스리 라마크리슈나의 위대한 제자에 빗댄 이 말은 아디를 기쁨과 결의로 가득 채웠다.

1921년, 아디는 고열로 심하게 앓았다. 우파스니 마하라지가 퀴닌 정제로 그를 치료하는 동안, 바바는 날마다 아디를 찾아와 손수 차나 물을 가져다주고 방 안을 오가며 걸을 수 있도록 부축해 주었다. 아디는 예상보다 빨리 회복했고, 바바가 보여 준 사랑 어린 보살핌은 그에게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겼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어머니나 아버지의 사랑은 메헤르 바바의 사랑에 비하면 작은 연못에 지나지 않는다. 바바의 사랑은 바다와 같다! 바다의 사랑을 구하는 편이 낫다!"

바바는 여러 방식으로 아디의 순종을 시험했다. 한번은 길가의 무성한 선인장 울타리 옆을 지나다가 바바가 갑자기 물었다. "언제든 내가 시키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아디가 그렇다고 하자 스승은 명했다. "쓰고 있는 토피를 벗어 저 울타리 속으로 던지십시오." 멋진 옷차림을 좋아하던 아디에게 그것은 가장 아끼던 햇볕 가리개 토피였지만, 그는 망설임 없이 따랐다. 이 일은 평생에 걸친 그의 봉사를 특징지을 항복을 잘 보여 준다.

1922년, 바바는 놀라운 방식으로 아디에게 초인적인 힘을 보여 주었다. 바바는 아디에게 온 힘을 다해 자신과 씨름하라고 했다. 바바가 허약해 보여 머뭇거리던 아디가 살살 맞붙자 바바는 다그쳤다. "아닙니다! 있는 힘껏 하십시오!" 아디가 마침내 온 힘을 쏟자, 바바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그를 번쩍 들어 바닥에 내던졌다. 또 한번은 바바가 만달리 모두에게 줄다리기를 제안했는데, 40명이 힘을 합쳐도 바바를 한 치도 움직이지 못했다.

아디 시니어는 자주 바바의 야간 경비를 섰고, 그 시간이면 바바의 다리를 주물렀다. 이 가까운 시간 동안 아디는 다른 이들이 거의 보지 못한 바바의 우주적 작업의 한 면을 목격했다. 한번은 바바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며 우는 모습을 보았다. 또 어느 밤에는 바바가 갑자기 극심한 고통에 휩싸였다.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 돌바닥에 누워 괴로움에 몸부림쳤고, 이마에는 땀이 맺히고 손발은 차갑게 식었다. 견디기 힘든 고통이 20분 동안 이어진 뒤 바바는 말했다. "오늘 당신은 나의 우주적 고통이 무엇을 뜻하는지 충분히 보았습니다!"

아디는 바바의 영적 힘이 드러나는 일을 여러 번 목격했다. 1927년 9월, 인도의 다른 지역에는 홍수가 났지만 아흐메드나가르는 가뭄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바바에게 와서 비를 내려 달라고 빌었다. 아디가 왜 아흐메드나가르에만 비가 오지 않는지 물었을 때 바바는 미소만 지었다. 이튿날 아디가 같은 질문을 되풀이하며 비를 내려 달라고 청하자, 스승은 곧바로 모직 카믈리 코트를 벗으며 말했다. "열기가 모두 빠져나갔습니다. 이제 서늘해질 것입니다." 금세 구름이 몰려들었고 밤새 큰비가 내렸다.

1936년 3월 4일, 아디는 아버지 칸사헵이 순수한 사랑으로 메헤라바드의 땅 전체를 메헤르 바바에게 넘겼다고 바바에게 알렸다. 이 선물은 여러 세대에 걸쳐 바바의 작업을 떠받칠 물리적 터전이 되었다.

아디는 메헤르 바바와 함께 세계 곳곳을 다녔고, 자주 스승의 차를 몰았다. 미국과 유럽 등 바바의 서양 방문에도 동행했다. 1956년에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머틀 비치의 메헤르 영성 센터를 찾은 바바의 역사적 방문에 함께했고, 워싱턴 D.C.와 뉴욕 등지에서 열린 모임과 행사에도 참여했다.

바바의 생전은 물론 그 이후에도 아디는 스승의 주요 대변인으로서 세계 곳곳에서 바바의 삶과 가르침을 강연하고 질문에 답했다. 메헤르 바바도 아디의 오랜 봉사를 짧지만 깊이 있는 말로 인정했다. "여러분 모두 그를 압니다. 그에 대해 더 말할 것은 없습니다. 그는 지난 30년 동안 나와 함께해 왔습니다."

1963년 2월 28일, 메헤르 바바가 마하라니 샨타데비를 보내 코부르의 메헤르스탄 개관을 선언하게 했을 때, 바바의 깃발을 펼치는 영예는 아디 K. 이라니에게 돌아갔다. 세상을 향해 바바의 깃발을 든 기수로서 그의 역할을 상징적으로 인정한 일이었다.

아디는 『동서양에서 전한 메헤르 바바의 메시지 (Messages of Meher Baba Delivered in the East and West)』(1945) 등 메헤르 바바의 메시지를 엮어 펴냈다. 또한 『아바타 메헤르 바바의 생애 회람 (The Life Circulars of Avatar Meher Baba)』, 『메헤르 바바에 대한 질문과 답변 (Questions & Answers on Meher Baba)』, 『아바타 메헤르 바바 약전 (A Brief Life-Sketch of Avatar Meher Baba)』(1960)을 쓰거나 펴내어 바바의 말이 세계 곳곳에 닿게 했다. 그 자신의 강연과 글은 훗날 『오직 그분을 사랑하기 위해 (Just to Love Him)』(1985)로 묶여 나왔다.

1969년 메헤르 바바가 육신을 떠난 뒤에도 아디는 쉼 없이 봉사를 이어 갔다. 세계 각지의 바바 센터에서 강연하고 구도자들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1979년에는 머틀 비치의 메헤르 센터에서 시타르를 연주하는 마이클 시걸과 함께 공연하는 모습이 사진에 담겼는데, 헌신의 삶 속에 배어 있던 그의 기쁨을 잘 보여 준다.

아디 K. 이라니는 1980년 3월 4일 인도 안드라프라데시에서 76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하부 메헤라바드에 안장되어 사랑하는 스승의 사마디 가까이에 잠들어 있다. 그의 삶은 한 영혼이 아바타에게 온전히 내맡길 때 일어나는 변화를 보여 준다. 맛있는 음식과 멋진 옷을 좋아하던 대학생이, 바바가 약속한 그대로, 메헤르 바바의 메시지를 세상에 알린 가장 중요한 도구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사진 갤러리(88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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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연표

1903

9월 4일 인도 아흐메드나가르에서 카이쿠쉬루와 굴마이 이라니 사이에서 태어남

1921

고열로 심하게 앓음. 메헤르 바바가 손수 간호하여 회복

1922

씨름에서 바바에게 내던져지고, 만달리 40명이 줄다리기로도 바바를 움직이지 못하는 초인적인 힘을 목격

1927

아흐메드나가르에 가뭄이 들었을 때 바바가 카믈리 코트를 벗자 비가 내리는 것을 목격

1936

아버지 칸사헵이 메헤라바드 땅 전체를 메헤르 바바에게 넘김

1949

새로운 삶 시기에 바바와 동행하며 베나레스에서 탁발에도 함께함

1956

바바의 역사적인 머틀 비치 메헤르 영성 센터 방문과 미국 순회에 동행

1963

코부르 메헤르스탄 개관식에서 메헤르 바바의 깃발을 게양

1979

머틀 비치 메헤르 센터에서 시타르를 연주하는 마이클 시걸과 함께 공연

1980

3월 4일 안드라프라데시에서 별세. 하부 메헤라바드에 안장

말씀

“

내가 언제 무엇을 시키든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 모자를 벗어 저 울타리 속으로 던지십시오.

(1922년 푸나. 남성 제자들과 걷던 바바가 빽빽한 선인장 울타리 옆을 지날 때 한 말이다. 멋진 옷을 좋아하던 아디는 아끼는 햇빛 가리개 모자를 쓰고 있었고, 준비가 되었다고 답하자 바바는 이렇게 명했다.)

“

내가 모욕적으로 대했을 때 상처를 받았습니까? … 이제 그 일은 잊으십시오. 모욕을 겪는 단계는 당신에게 아주 좋습니다. … 내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당신을 굴욕 준 것은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1923년 봄베이 만질-에-밈. 경기 도중 비슈누와 다투어 바바의 28개 명령 가운데 하나를 어긴 아디를 바바는 모두 앞에서 호되게 책망했다. 그 뒤 다른 이들을 내보내고, 많이 상처받았다고 답하는 아디를 위로하며 안아 주었다.)

“

내가 몇 번이나 멈추라고 외쳤는데 왜 무시했습니까? 당신은 평생 다시는 운전하지 마십시오!

(1924년 5월 26일, 엘로라 동굴로 가던 길. 다른 차가 고장 나자 바바는 아디에게 운전을 맡겼지만, 아디는 후진하다 나무를 들이받았다. 훗날 아디는 오랜 세월 바바의 차를 몰게 된다.)

“

오늘 당신은 나의 우주적 고통이 무엇을 뜻하는지 충분히 보았습니다!

(1926년, 야간 당직을 서던 아디 앞에서 바바가 20분 동안 극심한 고통을 겪은 뒤 한 말, 『로드 메허』 726쪽)

“

당신은 먼지처럼 되어야 합니다. 당신을 먼지로 만들기 위해 내가 당신을 꾸짖었습니다. … 당신은 아무것도 잃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손실이라고 여기는 것이 사실은 이득입니다. 잃음이 있는 곳에 얻음이 있고, 잃음 없이는 얻음도 없습니다. 먼저 에고를 벗어 버리지 않고서 어떻게 유익을 얻고 하나님을 실현할 수 있겠습니까?

(1927년 메헤라바드. 바바의 전기를 쓰던 K. J. 다스투르가 토굴 창가 자리를 비키라고 퉁명스럽게 말하자 아디는 날카롭게 맞받았다. 바바는 아디를 꾸짖고 다스투르의 발에 손을 대 용서를 구하게 했으며, 다스투르가 떠난 뒤 이렇게 설명했다.)

“

내가 당신을 위해 한 것은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고, 내가 당신과 함께 한 것도 아무와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나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당신의 낮은 자아는 근절되었지만, 당신의 마음은 여전히 남아 있어 당신을 괴롭힙니다.

(1930년 2월 나식. 바바는 은둔 중이었고 아디는 형 루스톰의 집에 머물고 있었다. 바바는 아디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

처음에 나는 당신과 비슈누가 가장 순종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당신들 둘 다에게서 이기심을 발견합니다. 당신은 오직 영적 이득을 위해 일했고, 비슈누는 금전적 도움을 위해 일했습니다.

(1934년 9월 메헤라바드. 바바가 아디를 챔피언 불평꾼이라 부른 지 몇 주 뒤의 말이다. 바바는 이어서 영적이든 물질적이든 이득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을 섬긴 사람은 아직 없었으며 아르준이 가장 가까웠다고 말했다.)

“

당신은 모하메드를 칸으로 데려와 나의 큰 일을 완수했습니다.

(1937년 10월 칸. 아디와 바이둘은 머스트 모하메드를 배에 태워 인도에서 프랑스까지 데려왔다. 종잡을 수 없는 머스트를 달래 가며 항해를 마친 끝에 10월 8일 바바의 빌라에 도착했다.)

“

람나드의 머스트는 인도에서 가장 중요한 머스트입니다. 그는 모든 머스트의 왕이며, 그를 다시 접촉하는 것은 머스트들과의 내 접촉에서 매우 중요한 단계입니다. 당신은 내 생일[다음 날]에 이 중요한 용무로 나를 태우고 가고 있으니 운이 좋습니다.

(1941년 2월 13일, 마드라스에서 람나드로 가는 길. 방갈로르에서 여러 달 바바와 떨어져 지내던 아디는 마드라스로 불려 와, 람나드의 머스트 팔루콜라 바바를 만나러 가는 바바를 태우고 밤새 차를 몰았다.)

“

나는 오로빈도를 여섯 번째 경지에서 일곱 번째 경지로 밀어 올리고 있었습니다.

(1950년 12월, 봄베이에서 머스트 작업을 하던 때. 바바는 밤새 기분이 몹시 언짢았는데, 라디오에서 여섯 번째 경지의 성자 오로빈도 고쉬가 전날 밤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나왔다. 나중에 바바는 아디에게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설명했다.)

“

왜 빨리 운전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시킨 대로 운전했더라면 우리는 그 여자들을 마주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길을 건너기 전에 이미 지나갔을 것입니다. 제발, 내가 말한 대로 하십시오!

(1952년 12월 12일, 메헤라자드에서 쿨다바드로 가는 길. 바바는 아디에게 더 빨리 달리라고 거듭 재촉했지만 길이 나빴다. 로니 마을 근처에서 한 소녀가 길을 되돌아 건너자 보이지 않게 뒤따르던 다른 소녀가 차에 치였고, 소녀를 진료소로 옮긴 뒤 바바는 아디를 꾸짖었다.)

“

나는 내 만달리와 친밀하지만, 내가 베푸는 너그러움을 여러분이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실수를 했으면 인정하십시오. 계속 따지지 마십시오.

(1963년 푸나 구루프라사드. 해리 켄모어가 묵던 호텔에 음식을 가져다주러 갔던 아디가 한참 늦게 돌아왔고, 바바가 까닭을 묻자 장황하게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영상

저서 및 출판물

오직 그분을 사랑하기 위해

Just to Love Him

메헤르 바바에 관한 아디 자신의 강연과 글을 모은 책. 사후 출간(셰리아 프레스, 1985)

동서양에서 전한 메헤르 바바의 메시지

Messages of Meher Baba Delivered in the East and West

아디 K. 이라니가 엮어 펴냄(1945)

아바타 메헤르 바바의 생애 회람

The Life Circulars of Avatar Meher Baba

메헤르 바바의 생애를 알린 회람을 엮은 책

메헤르 바바에 대한 질문과 답변

Questions & Answers on Meher Baba

메헤르 바바에 관해 흔히 묻는 질문에 답한 소책자

아바타 메헤르 바바 약전

A Brief Life-Sketch of Avatar Meher Baba

메헤르 바바의 짧은 전기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