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을 들은 산야시는 바바에 대해 마음이 흔들렸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떠나 다시는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같은 날 오후, 산야시 두 명이 더 메헤라바드에 도착했고 며칠 머물도록 허락받았다.
3월 17일 목요일은 힌두 축제 홀리였고, 바바의 다르샨을 위해 인파가 몰렸다. 저녁에는 구덩이를 파고 홀리 모닥불을 피웠다. 그 후 아티야파티야 놀이를 했다.
만달리가 진지하게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자 바바가 말했다. "무엇을 하든 온마음으로 하십시오." "놀이든 일이든 전심을 다하십시오."
3월 18일 루스톰은 메헤라바드에서 아흐메드나가르의 쿠쉬루 쿼터스로 옮겨 아내와 아이들 곁으로 돌아갔다. 바바는 그에게 메헤라바드에 정기적으로 오라고 했고, 그는 다음 날부터 보통 가족을 데리고 방문하기 시작했다. 그의 남동생 아디도 그 무렵 쿠쉬루 쿼터스에 살고 있었다.
다음 날 보르커가 바바를 만나러 와 두 사람 사이에 긴 대화가 이어졌다. 보르커는 바바의 지침에 따라 아흐메드나가르에서 메헤르 아쉬람을 운영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바바는 누세르완이 정치를 그만두게 설득할 수 있다면 그를 보르커의 조수로 쓰라고 권했다. 또 보르커에게 다른 모든 자선·교육 기관과의 관계를 끊으라고 조언했다.
1927년 3월 20일 일요일, 바바는 만달리 18명과 함께 아흐메드나가르로 갔다. 루스톰이 쉐보레로 바바와 여섯 명을 태웠고, 나머지는 트럭으로 따라갔다. 바바는 먼저 라야 사카레 집으로 갔고, 그곳에서 바바의 아르티가 이루어졌으며 라야 딸의 결혼을 기념하는 성대한 점심이 대접되었다. 나브사리의 구자라티 문학자 소랍지 데사이가 바바를 만나러 왔고, 다시 스승 앞에 서게 된 것에 깊이 감동했다. 이후 바바는 바우 사헵 완자리, 다케이, 칸호바 가데카르의 집을 방문했고, 마지막으로 쿠쉬루 쿼터스에 들른 뒤 메헤라바드로 돌아왔다.
3월 21일은 페르시아 신년 잠쉐드에나브로즈였다. 바바는 목욕 의식을 받고 경배를 받았으며 아르티가 불렸다. 단체사진도 촬영했다. 바바 뒤를 걷던 소랍지 데사이는 여러 스승에게서 "보물"을 모으는 취미가 있어 바바 발 아래의 먼지를 모으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