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는 병원에 있는 아르준을 자주 찾아가며 사랑을 보여 주었다. 12월 3일과 4일에는 다르샨을 위한 큰 모임이 있었지만, 바바는 시간을 내어 아르준을 방문하고 비왈카르 박사에게 간호에 관한 상세한 지시를 내렸다.
로나블라에서 열흘을 보낸 뒤, 바바는 1926년 12월 5일 일요일 오후에 만달리와 함께 기차로 봄베이로 가기로 결정했다. 1925년 메헤라바드에서 바바를 만난 봄베이의 신자 람다스 씨를 통해, 산타크루즈(북쪽 교외)에 바바를 위한 집이 마련되었다. 떠나기 전 바바는 다시 가니와 비왈카르 박사와 상의하며 아르준의 간호에 대한 최종 지시를 내렸다. 카림과 와만 숩니스는 뒤에 남아 그를 간호하고, 회복되면 봄베이로 데려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바바는 요양원에 있는 아르준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찾아갔고, 마지막 입맞춤을 해 준 뒤 떠났다. 그 마지막 입맞춤으로 아르준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산산이 찢기고, 그의 삶이 존재(Existence)로 변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바바와 만달리는 5시에 다다르 기차역에 도착했다. 아마와샤(음력 그믐)라는 종교 휴일이자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나발과 람다스 씨는 일행을 숙소로 옮길 교통편을 마련할 수 없었다.1 마침내 빅토리아 마차를 빌려, 바바는 몇몇 만달리와 함께 그 마차를 타고 방갈로로 갔다. 여성들은 나발과 함께 완행열차를 타고 산타크루즈로 갔다.
한편 기차역에서는 베흐람지가 남자들에게 부피가 크고 무거운 짐을 멀리 떨어진 반대편 승강장으로 옮겨 완행열차를 타라고 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짐의 수를 생각하면, 이것은 매우 고된 작업이었다. 사람들이 모여 이 뜻밖의 짐꾼 무리를 구경했다. 짐이 통행을 막고 있다며 철도 당국이 오고, 이어 경찰까지 와서 짐을 빨리 치우라고 재촉했다. 트롤리를 빌려 짐을 실었지만, 선로를 건너는 중에 바퀴 하나가 끼어 버렸다. 기차 두 대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기에, 모두가 바퀴를 빼내 트롤리를 움직이려고 온힘을 다했다. 기차들이 증기를 내뿜으며 지나가는 바로 그때, 그들은 가까스로 수레를 빼낼 수 있었다.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고, 모두는 내내 바바의 이름을 불렀다. 큰 어려움 끝에 그들은 그날 밤 10시 30분, 극도로 지친 상태로 람다스의 방갈로에 도착했다.
다음 날 바바는 봄베이에 머무는 동안 그들이 따라야 할 일정을 정해 주었다.
각주
- 1.아마와시야(Amawasya)는 목욕, 기도, 금식을 행하는 무월(無月)의 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