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늦게 여러 사람이 바바를 찾아왔다. 바르솝, 초우다리, 자마다르, 사이예드 사헵은 푸나에서 왔고, 메모는 며칠 뒤 마니, 아디 주니어, 베헤람과 함께 도착했다. 재단사 와만도 아흐메드나가르에서 합류했다.
27일 바바와 만달리 몇 명은 인근 관광지 칸달라로 드라이브를 갔다. 돌아오는 길에 바바는 추종자 R. 비왈카르 박사가 최근 연 무약 치유 개인 요양원, 즉 비왈카르 자연요법 헬스홈을 가리켰다. 바바는 차를 세우게 한 뒤 의사에게 안을 둘러봐도 되겠냐고 물었다. 비왈카르 박사는 몹시 기뻐했다. 그는 바바가 칸달라로 가며 자기 집 앞을 지난다는 소식을 듣고, 가족과 함께 바바를 잠깐이라도 보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바바는 각 방을 둘러보고 방문록에 서명까지 했다.
1926년 11월 28일 일요일 아침, 왈반 방갈로 주인의 아들이 친구 셋과 와서 여성 만달리가 머무는 집 북쪽으로 가겠다고 억지를 부렸다. 페수가 막으려 했지만, 그 젊은이들은 그 건물이 바바를 위해 임대된 사실을 모르는 듯 말을 듣지 않았다. 만달리가 모여 상황을 설명했지만 침입자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만달리는 그들을 둘러싸 진입을 막았다. 젊은이들은 만달리를 모욕하며 겁쟁이라고 욕하기 시작했다. 바바 지시에 따라 만달리는 그 불량배들에게 손을 대어 본때를 보일 수 없었다. 추가 말싸움 끝에 십대들은 계속 투덜거리며 만달리를 욕한 채 물러갔다.
바바는 방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다가, 그들이 떠나자마자 만달리를 밖으로 불러 구슬치기를 시켰다. 상황은 극도로 긴장돼 있었고 대부분의 남자들은 억눌린 분노로 들끓고 있었다.
한참 놀고 나서 바바가 말했다. "늘 내 곁에 있고 내 강의를 수없이 들은 너희가 도발받았다고 쉽게 화를 낸다면, 세상 사람들이 똑같이 행동한다고 어찌 탓할 수 있겠느냐? 그들은 무지하다. 형제들이여, 그들이 자기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에 그 무례함과 버릇없음을 용서하자. 욕설과 경솔한 행동이 있었어도 그들은 내 영역 안에 들어왔으니 결국 유익을 얻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