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무리 오랜 세월 설명해도 너희는 그 지복이 무엇인지조차 감을 잡지 못한다. 체험 없이는 결코 이해할 수 없다.
바바는 만달리에게 다른 비유를 들며 계속 석판에 적었다: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이 마칸을 하나님 실현의 집이라고 생각해 보라. 그 안에는 상자, 그릇, 랜턴 등 많은 것들이 있다. 그런데 네가 그것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전혀 모른다고 해 보자. 그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느냐? 방법은 둘이다. 설명을 듣거나 직접 보는 것, 즉 체험이다. 묘사, 정의, 설명으로 가는 길은 매우 어렵고 길다. 하지만 눈을 가린 채 그 집 안으로 데려간 뒤, 안에서 눈가리개를 벗긴다고 해 보자. 그러면 스스로 보게 되고, 그 집에 무엇이 있는지 정확히 알게 된다.
다른 예를 보자. 아랑가온의 문맹 마을 사람의 눈을 가리고 뉴욕으로 데려간다고 하자. 눈가리개를 벗기면 그는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을 보고 놀라게 된다. 마차, 자동차, 전차, 기차 등 도시의 온갖 번잡한 풍경에 그는 사방을 멍하니 둘러볼 것이다! 그에게 아랑가온에서 이런 것들을 몇 년이고 설명해 봐야 헛일이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뉴욕을 직접 보면 순식간에 알게 된다. 마찬가지로 내가 모든 것을 설명하다 죽는다 해도, 너희는 지금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체험이 지식을 준다.
하나님 실현은 가능하다. 다만 너희 눈이 가려져 있어 그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를 뿐이다. 내가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사트-마르가(진리의 길)의 "진주"를 진심으로 내밀어도, 너희는 다시 나르카(오물)에 입을 담근다. 그러므로 사드구루의 첫째 의무는 너희를 마야의 독한 손아귀에서 풀어 자유롭게 하고, 그다음 체험을 주는 것이다.
명상, 영적 수행, 신명(神名) 염송 등 너희에게 짐이 되는 것은 모두 내려놓아라. 그런 수행은 오히려 너희를 더 혼란스럽게 할 뿐이다. 영원한 지복에 잠겨 세상과 세상사를 의식하지 못하는 마주브를 찾아간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