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5월, 여러 나병 환자가 모였고 메헤라바드에는 그들을 위한 별도 구역이 마련되었다. "나병 환자 아쉬람"은 파르바티라는 여성이 맡았는데, 그녀 자신도 나병 환자였다. 파르바티가 처음 도착한 날 바바는 그녀를 다정히 맞아 주고, 숙소와 식사에 필요한 모든 것을 자비롭게 마련해 주었다. 그녀는 스승의 신뢰받는 조수이자 감시자가 되었다. 나병 환자 중 누가 지시를 어기면 곧장 바바에게 보고했기 때문이다. 다른 나병 환자들은 바바에게 "우린 당신보다 파르바티가 더 무섭습니다!"라고 불평하곤 했다.
한번은 바바가 여성 만달리 한 사람에게 화를 냈다. 그는 파르바티에게 샌들로 그녀를 치라고 명령했고, 파르바티는 즉시 따랐다. 맞은 여성 만달리는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파르바티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스승의 명령을 수행한 점을 칭찬하며 순종을 높이 평가했다.
5월 21일 아조바가 성경 몇 쪽을 읽어 준 뒤 바바가 말했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모두 참되다. 그의 재현의 때도 아주 가까이 와 있다. 그때가 되면 너희는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내가 그리스도와 어떤 연결을 갖는지 알게 될 것이다."
다음 날 바바는 학교 아이들과 교사들을 데리고 비사푸르로 소풍을 갔다. 눈에 띄지 않고 다르샨을 피하려고 그는 바지, 셔츠, 신발과 양말, 큰 펠트모자로 된 영국식 복장을 했다. 바바는 그 일대에서 이미 꽤 알려져 있었기에, 메헤라바드를 떠날 때면 익명으로 움직이길 선호했다. 사람들이 못 알아보도록 변장했고, 때로는 짙은 선글라스까지 착용했다. 또한 만달리에게도 그의 정체를 숨기고 그를 바바라 부르지 말라고 지시했다.
일행이 비사푸르역에 도착하자 바바는 먼저 아이들에게, 이어 교사들과 만달리에게 간식을 나눠 주었다. 그 후 그들은 비사푸르 감옥 죄수들이 공사 중이던 큰 호수와 저수지를 보러 갔다.
죄수들의 고된 노동을 보며 스승은 말했다. "이 불쌍한 이들은 나라와 사회의 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말 못 할 고난과 결핍을 겪고 있다. 그렇다면 하느님과 자연의 법을 거스르는 자들의 운명은 어떻겠느냐? 신성한 법을 어기지 않는 가장 좋은 길은 사드구루에게 완전히 귀의하고 그의 지시를 글자 그대로 따르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