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커타에서 무르티가 어떤 개인적인 문제에 관해 바바의 조언을 구하는 편지를 보냈다.
바바는 이렇게 전보로 답했다. "네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라."
1968년 12월 11일 바바는 다음 해 자신의 75번째 생일을 위한 이 메시지를 받아쓰게 했지만, 아디에게는 1월이 지난 뒤에야 그것을 인쇄해 배포하라고 지시했다.
내가 네게 무엇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나를 사랑한다면, 그것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자신을 위해 무엇을 얻으려고 내 대의에 무언가를 희생하는 것은, 눈먼 사람이 시력을 얻기 위해 자기 눈을 희생하는 것과 같다. 나는 사랑이기에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신성한 님이다. 이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 이는 무한한 시야의 축복을 받아, 나를 있는 그대로 보게 될 것이다.
1968년 11월 28일 바바의 혈액과 소변 샘플이 푸나의 루비 홀 클리닉으로 보내졌지만, 검사 결과는 분명하지 않았다(샘플이 가는 도중 상했을 수도 있었다). 12월 5일 돈 편에 추가 샘플을 보냈을 때,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병리학자 R. N. 이차포리아 박사(여사)는 고허에게 편지를 써서, 바바의 헤모글로빈 수치가 7퍼센트까지 떨어졌고(정상은 14), 혈중 요소는 148mg(정상은 20~40)이라고 알렸다. 이는 신체 대사의 노폐물이 신장을 통해 제대로 배출되지 않고 있음을 뜻했다. 이차포리아 박사는 이렇게 썼다. "바바는 [혈액 헤모글로빈을] 매주 2그램[12퍼센트]씩 잃고 있습니다. 긴급히 수혈이 필요하며, 그 뒤에도 일주일 간격으로 두 번 더 받아야 합니다."
그랜트 박사와 상의했는데, 그는 그 보고서를 보고는 자신이 읽은 내용을 믿을 수 없었다. 그는 돈에게 바바에게 의식이 있는지 물었다. 돈은 바바가 완전히 의식이 있다고 대답했다. 그랜트는 첫 번째 보고서에 실수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12월 13일 다시 혈액 검사 보고서를 요청했다. 혈중 요소 수치는 이제 97mg이었지만, 헤모글로빈은 5.8퍼센트였다. 실수는 없었다. 요소와 혈당 수치는 나아졌지만, 혈구 수치는 몹시 불안스러웠고 즉시 수혈이 필요했다. 몇 주 전 바바가 암시했던 바로 그것이었다.
아디는 13일 아침 메헤라자드에 가서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방 안에 계신 바바를 본다. 신체 상태가 전혀 좋지 않다. 에루치와 프란시스, 바우가 그를 힘겹게 일으켜 세운다."
1968년 12월 15일 일요일 오전 7시 30분, 그랜트 박사가 간호사와 함께 푸나에서 메헤라자드로 와서 바바에게 수혈을 하고 심전도를 실시했다.1 메헤르지는 와디아 박사와 이차포리아 박사와 함께 왔고, 아디와 돈도 자리에 있었다.
각주
- 1.바바의 혈액형은 AB+로, 모든 혈액형의 피를 받을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