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달 사이 바바의 발은 변해서 돌처럼 단단해졌다. 피부가 너무 두꺼워져 날카로운 바늘조차 뚫고 들어가지 못했다. 그의 일이 다리와 발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고, 몸도 약해졌다. 그럼에도 바바는 만달리에게조차 자신의 실제 건강 상태를 숨겼고, 몹시 지쳐 있으면서도 건강이 비교적 안정되어 어쩌면 나아질 수도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의자에 앉기 전 바바는 홀을 위아래로 걸었고, 카카는 경호원처럼 그의 곁을 지켰다. 카카는 사물과 사람의 이름을 틀리게 발음하거나 엉뚱하게 부르면서도 자신의 "새 언어"를 대단한 자신감으로 구사해, 그럴 때마다 바바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바바는 여러 차례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이 내 짐을 더하는데, 카카는 그중 얼마간을 덜어준다."
바바는 시간을 정확히 지키는 데 매우 엄격해서, 토론이 한창이거나 기사나 뉴스가 낭독되고 있을 때 아무리 귀 기울여 듣는 것처럼 보여도 늘 정해진 시각인 오전 11시에 홀을 떠났다. 그는 벽시계에서 눈을 떼지 않는 일을 한 번도 잊지 않았다.
어느 날 세상의 현 상태를 두고 바바는 한탄했다. "엉망진창이다! 내 모든 강림 가운데 이번 강림에서 나는 인내를 극한까지 발휘하고 있다."
또 한 번 그는 만달리에게 말했다. "너희는 모두 망가진 가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너희를 고른 것은 나이니, 너희는 내가 원하는 바로 그것이어야 한다."
호주의 젊은 예술가 윌리엄 리딩은 1966년, 열아홉 살 때 처음 메헤르 바바에 대해 들었다. 그는 바바에 대해 구할 수 있는 문헌은 모조리 읽은 뒤, 마침내 빌 르 페이지의 모임에 나가 바바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 얼마 뒤 그는 영국에서 출발해 유럽과 아시아를 거쳐 호주까지 자전거를 타고 온 젊은 영국인과 친구가 되었다. 이 새 친구의 영향을 받아 리딩은 미술학교를 나온 뒤 첫 직장을 구했고, 바바가 엄격한 은둔 중이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그를 볼 희망을 품고 인도로 떠날 마음을 굳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