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사실이었다. 모든 서신이 금지되어 있었는데도 동양과 서양 양쪽에서 여전히 많은 편지가 도착하고 있었다. 아침 작업이 끝나면 편지들을 바바에게 소리 내어 읽어주었고, 프란시스는 자신이 최근에 쓴 가잘을 낭독하곤 했다. 그러고 나서 바바는 점심을 먹으러 여자들이 있는 쪽으로 갔다가 오전 11시 30분에 돌아오곤 했다.
대부분의 편지는 다르샨을 구하는 사람들이 보낸 것이었다. 어떤 편지는 가족의 출생이나 사망을 바바에게 알렸고, 어떤 편지는 고충을 토로했으며, 또 어떤 편지는 질문을 담고 있었다. 그런 편지들 가운데 하나는 어떤 종교 종파에 속한 사람에게서 온 것이었다.
그 종파를 두고 바바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의 은총의 빛을 피해 스스로를 숨기는 정통파 사람들도, 그럼에도 결코 그분의 자비를 잃지는 않습니다."
바바는 또 예수에 대해 만달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예수는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아버지, 저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저들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말한다."1
1967년 12월 3일 일요일, 차간이 메헤라자드에 와서 하미르푸르의 박람회들에 대해 보고했다.
그러고 나서 바바는 그 박람회들을 조직한 이들, 즉 가야 프라사드 카레, 스리팟 사하이, 람사하이 야다브, 바부 람프라사드, 푸카르, 시타람, 케샤브 니감, 락슈미찬드 팔리왈에게 다음과 같은 전보를 보냈다. "나는 인간 형상의 하나님이며, 지금의 깊은 은둔 속에서 너희에게 나의 사랑과 축복을 보낸다."
12월 5일, 바바는 다가오는 자신의 생일을 위해 다음 메시지를 구술했다.
나의 연인들이 나의 일흔넷째 생일에 기뻐하게 하라. 3월 25일 직후에 이제껏 한 번도 없었던 위대한 일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메시지는 사무실의 아디에게 보내졌지만, 1968년 2월의 생일이 임박할 때까지는 공개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바로 그날 밤 8시, 찬지의 형제이자 아르나바즈의 아버지인 84세의 나오로지 다다찬지가 봄베이에서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었다. 그의 입술에는 바바의 이름이 머물러 있었다. 나오로지는 자신의 삶과 가족을 바바께 바쳤으며, 방갈로르(1939-40)에서 바바와 함께 지냈던 오랜 연인이었다. 건축업자였던 나오로지는 1938년 메헤라바드 언덕에 바바의 묘를 짓는 일을 감독했다. 그 무렵 바바는 봄베이를 방문할 때마다 다다르에 있는 나오로지의 집에 머물곤 했다. 그 방문을 기념하여, 바바가 쓰던 방에는 커다란 바바 초상화 앞에 기름등이 끊임없이 켜져 있었다. 바바는 아르나바즈, 나르기스, 호마, 로다에게 그들의 사랑하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왔고" "그의 사랑 안에서 더없이 행복하다"는 전보를 보냈다. 나오로지의 이름은 세상을 떠난 이들의 명단에 추가되었다.
각주
- 1.바바는 더 이상의 설명을 하지는 않았지만, 아마 그의 현현 전에 세상이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되리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