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디와 사로쉬, 빌루는 바바에게 헌정된 그 부스를 지원하기 위해 바바의 대표로 파견되었다. 인디라 간디 총리는 공식적으로 박람회의 개막을 선언한 뒤 오픈 지프를 타고 행사장을 돌아보았다. 그녀가 그 부스 가까이 오자 가즈와니가 다가가 위에 걸린 큰 간판, 곧 "AVATAR MEHER BABA THE AWAKENER"라고 적힌 문구를 가리켜 보였다. 아마르 싱 사이갈이 그녀에게 차에서 내려 좀 더 가까이서 보라고 권했지만, 그럴 시간은 없었다. 인디라 간디는 지프에 선 채 지나가면서 두 손을 모아 바바의 초상화에 절했다.
아디와 사로쉬, 빌루는 1967년 11월 2일 오전 9시 30분 메헤라자드에 가서 바바에게 자세히 보고했다.
1967년 9월부터 바바는 홀에서 바우에게 요점을 구술하던 정규 세션을 중단했지만, 밤 당번 시간에는 가끔 《무와 모든 것》 제2부를 위한 요점들을 바우에게 일러 주곤 했다. 바우는 이 새로운 요점들을 여러 권의 공책에 모아 적었다. 1967년 10월 10일, 바바는 다음과 같이 구술했다.
태초에 무한한 지식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고, 무한한 무지 또한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무지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식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고, 무지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무지가 지식이었고 지식은 무지했다. 무지는 지식 안에 있었고, 지식은 무지 안에 있지 않았다.
변덕이 일어났을 때 무지와 지식 안에 동요가 생겼고, 지식과 무지 사이에는 무한한 충돌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무한한 폭발이 일어났고, 지식은 결코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그 폭발의 영향은 무지에게 미쳤다. 그리고 그 결과 무한한 무지는 셀 수 없이 많은 유한한 무지들로 터져 나왔다.
메헤르나스의 열네 번째 생일이던 1967년 10월 22일 일요일, 바바는 그와 라마, 쉴라를 점심 식사에 메헤라자드로 불렀다. 그날 마니는 바바와 함께한 가족 사진 몇 장을 찍었고, 바바와 메헤르나스만 함께 찍은 사진도 한 장 더 남겼다.
같은 날 10만 명이 넘는 반전 시위대가 워싱턴 D.C.로 모여 미국이 베트남 전쟁을 계속하는 일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24일, 아디는 사무실에서 멕시코 쿠에르나바카의 레그론 씨에게서 긴 전화를 받았는데, 그는 "서방 세계가 당신을 필요로 합니다"라는 말을 바바에게 전해 달라고 하며 바바가 곧 방문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바는 사랑 어린 답신을 보내, 자신의 은둔이 끝나고 서양인들이 부름을 받게 되면 레그론이 인도로 올 수 있다고 알렸다.
칸푸르의 라지 쿠마르 샤르마는 11월 6일 아디와 함께 메헤라자드에서 바바를 만났고, 바바가 이번 은둔을 마친 뒤 자신의 모든 어려움을 바바에게 말씀드리라는 말을 들었다. 바바는 그때가 되면 라지가 메헤라자드에 사흘이나 나흘 머무는 것을 허락할지도 모른다고 말했고, 샤르마는 몹시 기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