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은 비행기로 인도에 왔고, 2월 16일 목요일 푸나에서 돈이 그를 맞아 메헤라자드로 데려갔다. 그는 만달리 홀 맞은편 코티지에 있는, 프랜시스의 방 옆방에 머물게 되었다. 바이둘은 코티지 반대편의 작은 방에 머물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빌의 건강과 가족에 대해 물은 뒤 바바가 물었다. "잠은 잘 잤느냐?"
빌은 잘 잤다고 말했다.
바바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유머스럽게 말했다. "이걸 보니 내가 어릴 때 배운 시, '경기병대의 돌격'이 생각나는구나. 내 오른편엔 대포, 내 왼편엔 대포! 한쪽엔 프랜시스가 있고 다른 쪽엔 바이둘이 있는데 어떻게 잠을 잘 수 있겠느냐? 프랜시스는 잠꼬대를 하고 바이둘은 코를 곤다!"
가족과 함께 아바타스 어보드에 살고 있던 존 브루포드는 1930년대, 둘 다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하던 때 프랜시스 브라바존을 처음 만났다. 브루포드는 뛰어난 학생이었지만, 자신에게는 "심오하게 말할 것이 없다"고 느껴 미술을 포기했었다. 브루포드는 1956년에 처음 바바를 만났고, 1960년대 초에 이르러서야 자신도 바칠 것이 있음을 깨달아 바바의 얼굴과 머리를 조각하고 그리기 시작했다.
이번 인도 여행 때 빌은 존 브루포드가 바바를 형상화하는 작업의 진척을 보여드리기 위해 만든 파리 석고 두상 습작을 가져왔다. 바바는 그의 노력에 크게 만족하며 그것이 완벽하다고, 브루포드가 자신을 참으로 잘 포착했다고 말했다.
그는 말했다. "세상에 있는 나의 모든 센터가 이것의 복사본을 갖고 싶어할 것이다."
1967년 2월 22일, 바바는 존 브루포드에게 전보를 보냈다. "완전한 자인 나는 그대의 완전한 작품에 매우 만족한다."
나중에 바바는 브루포드에게 아바타스 어보드 부지에서 농사짓는 일을 그만두고 자신의 예술 작업에 전념하라는 지시를 보냈다.1
빌 르 페이지가 방문 중이었기 때문에, 바바는 건강이 좋지 않았음에도 매일 아침 만달리 홀로 나와 아바타스 어보드 개발 계획을 그와 논의했다. 빌은 이렇게 회고했다:
사랑하는 바바가 견뎌 낸 고통의 깊이와, 그 열나흘 동안 아바타스 어보드라는 전체 주제에 그가 쏟은 집중을 내가 마음속에 그리는 그대로 말로 전하는 일은 어렵다 못해 거의 불가능하다.
각주
- 1.1967년 존 브루포드가 만든 첫 조각은 단지 바바에게 보여드리는 진행 보고용이었다. 빌 르 페이지는 인도에서 그것을 바바에게 보여드린 뒤 브루포드에게 돌려주었다. 최종 조각은 1970년에 완성되어 대량 제작되었다. 그 복사본들은 메헤라자드와 메헤라바드에 전시되어 있다. 1996년 브루포드 가족은 한 번도 수정되지 않은 1967년 두상의 청동 복사본을 마니에게 증정했다. 마니는 그것을 메헤라자드에 있는 바바의 침실에 두었고, 지금도 그곳에 전시되어 있다. 그녀는 그 두상을 애정을 담아 "오지 바바"라고 부르곤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