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4일, 바바는 아디에게 어윈과 에드워드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내게 했다. "더없이 행복하고 즐겁게 지내십시오. 지복의 근원이신 그분이 당신들과 함께 계십니다."
1966년 10월 3일, 바바는 오전 9시 30분에 아디와 돈을 메헤라자드로 불렀다. 그들은 돈의 새 밤색 월슬리 자동차를 타고 도착했다. 바바는 "차를 개시해 달라"는 돈의 부탁을 받아들여 몇 분간 앞좌석에 앉아 주었다. 그렇게 한 뒤 그는 메헤라자드 뒤편에 있는 자기 집까지 차를 타고 갔다.
8일에는 칼라 제작자인 신데가 새 칼라를 만들기 위해 바바의 치수를 재러 메헤라자드에 왔다. 그는 다음 날 아침 다시 왔다가 곧 푸나로 떠났다.
9월 말 며칠 동안 빌루는 루스톰 카카 편으로 바바에게 드릴 음식을 매일 보냈다. 차간은 10월 13일에 음식을 보내는 것을 허락받았다.
코르셰드는 1966년 10월 18일 메헤라자드에 도착해 일주일 동안 머물렀다. 돈은 21일 오전 9시 30분에 칼추리 가족을 데려왔다. 이는 다음 날인 메헤르나트의 열세 번째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나리만과 아르나바즈, 케이티는 29일에 찾아와 일주일 동안 머물렀다. 이는 31일 나리만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마넥은 빌루와 차간이 보낸 바바와 만달리를 위한 특별 음식을 스쿠터로 가져왔다. 제항구는 푸나에서 와 이틀 머문 뒤 31일에 떠났다.
메헤라자드로 찾아온 아랑가온 마을 사람들 때문에 바바의 은둔은 크게 방해를 받았다.
그들이 다녀간 다음 날 바바는 말했다. "1967년 11월까지 나는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지내고 싶다."
그는 힌디어와 마라티어, 영어로 다음과 같이 쓴 표지판을 만들도록 지시했다.
알림: 아바타 메헤르 바바는
어느 누구도 만나지 않으며 다르샨도 주지 않습니다
바바의 지시에 따라 세 언어로 된 표지판이 각각 두 개씩 준비되었다. 1966년 11월 5일, 한 세트는 만달리 홀 밖의 뉴 라이프 캐러밴에 세워졌고, 다른 한 세트는 남자 만달리 숙소 쪽으로 갈라지는 메헤라자드 진입로에 세워졌다.
같은 날 데라둔의 바바 애호자 발고팔 다스가 바바의 다르샨을 청하며 푸나에서 아디에게 전화를 걸었다. 발고팔 다스와 그의 아내 베이비라지는 데라둔에 메헤르 담을 세우는 일에 크게 기여했으며, 빈민 급식 같은 바바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행사와 여러 활동의 재정을 돕는 데도 큰 힘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