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루는 너무 기뻐서 그것이 열흘이 아니라 열 시간이었어도 감격했을 것이다.
바바가 물었다. "옷은 어떻게 가져올 것입니까?"
"트렁크가 있습니다." 그녀가 대답했다.
"트렁크요? 열흘인데!" 그는 그녀에게 작은 가방을 보여 주며 말했다. "이만큼만 가져가십시오."
알루 캄바타는 짐을 꾸려 여성 만달리와 함께 메헤라자드로 돌아왔다. 열흘이 지났지만 그녀는 실제로 큰 도움이 되었고, 바바는 그녀에게 더 오래 머물라고 지시했다. 결국 바바는 알루 박사를 메헤라자드에 6개월 동안 머물게 했고, 그녀를 위해 새 옷도 지어 주게 했다.
이 무렵 사코리의 예쉬완트 라오 보라브케는 푸나의 한 병원에서 위독한 상태에 있었다. 바바는 사다시브 파틸에게 그를 찾아가 보라고 지시했다. 그의 상태가 더 나빠지자 바바는 예쉬완트의 친척들에게 그를 사코리로 옮기라고 권했다. 예쉬완트의 딸과 다른 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바바의 지시에 따라 예쉬완트 라오는 6월 30일 구급차로 사코리로 옮겨졌다. 바바는 메헤르지와 사다시브를 통해 그 가족에게 자주 전갈을 보냈다. 예쉬완트 라오는 이틀 뒤인 1965년 7월 2일 밤 11시 25분에 세상을 떠났다.
바바는 B. T. 와그(아슈람 관리자)와 사코리의 다른 이들에게 이런 전보를 보냈다. "[예쉬완트 라오가] 내게 왔습니다."
한편 6월 30일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 휴전이 선언되었다. 그날 아침 아디가 구루프라사드에 도착했다. 바바는 고관절 통증을 겪고 있었고, 에루치, 마니, 메헤르지, 나리만, 잘바이, 펜두, 와만과 함께 아디를 침실로 불렀다.
바바는 침대에 누운 채 몸짓했다. "당신들이 12월 사하바스 프로그램 준비를 시작하기를 바랍니다." 바바는 이렇게 발표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1966년 2월 1일부터 40일 동안 나는 안드라 순회에 나설지도 모릅니다."
다음 날인 1965년 7월 1일 목요일 아침 7시 45분, 바바는 푸나를 떠나 메헤라자드로 향했다. 아디는 드소토를 몰아 바바와 여성들을 태웠고, 샤이크는 사로쉬의 차로 라노와 나자를 태웠으며, 와만은 아디의 차로 만달리를 태웠다. 바기라트의 트럭은 짐을 싣고 그 뒤를 따랐다. 바바는 중간에 멈추지 말고 계속 달리라고 고집했지만, 도로 일부가 보수 중이어서 울퉁불퉁한 길의 진동이 그의 고관절 통증을 크게 악화시켰다. 그 뒤 여러 날 동안 바바는 발에 체중을 실을 수도, 걸을 수도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