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맹위로 치밀하게 세워 둔 계획은 엉망이 되었다. 천막은 흠뻑 젖어 버렸다. 그러나 반가운 결과도 하나 있었으니, 때아닌 비가 무덥게 달아오른 여름을 식혀 주었다는 점이었다. 사실 이것은 바바가 그렇게 되게 한 것이었는데, 그의 애인자들이 극심한 더위의 해를 입지 않고 그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미르푸르에서는 거의 1,000명의 헌신자가 푸나로 왔고, 안드라에서는 2,000명, 인도와 파키스탄과 이란의 다른 지역들에서는 3,000명이 왔다. 이렇게 해서 6,000명의 애인자가 사랑하는 님이 그들에게 준 이 드문 기회를 붙잡기 위해 푸나로 몰려들었다.
1965년 5월 1일 토요일, 헌신자들은 날이 밝기 훨씬 전부터 푸나 센터에 모이기 시작했다. 벌들이 벌집으로 몰려들듯, 그들은 바바가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며 센터로 이어지는 길 양쪽에 줄지어 섰다. 센터의 홀에는 700명밖에 앉을 수 없었기 때문에 판달을 세웠지만, 그것마저도 금세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찼다. 그 결과 사람들은 길가로 쏟아져 나와, 큰길을 따라 수백 야드에 걸쳐 늘어섰다. 여느 때처럼 그 수천 명 속에는 서로 다른 종교와 카스트와 언어를 지닌 남녀노소, 온갖 계층의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오전 7시 55분에 바바의 차가 도착하자, 사람들은 한마음 한목소리로 "아바타 메헤르 바바 키 제이!"를 자발적으로 거듭 외쳐 댔다.
샤이크가 운전하던 바바의 드소토 자동차는 푸나 센터 입구에 멈추었고, 바바는 차에서 내려 리프트 의자에 앉았다. 구루프라사드에서 출발할 때 샨타데비는 바바와 아디와 함께 뒷좌석에 탔고, 에루치와 프란시스는 앞좌석에 앉았다. 메헤르지와 아디가 의자 앞쪽 손잡이를 잡았고, 에루치 혼자 뒤쪽을 들어 올렸다. 바바는 단상으로 옮겨졌고, 모인 이들에게 두 손을 모아 인사하며 무대 위에 서자 군중의 환호는 거대한 함성으로 치솟았다. 환호가 잦아들자 그는 자리에 앉았다. 홀 안은 남는 자리가 한 치도 없을 만큼 애인자들로 들어찼고, 남은 수천 명의 군중은 사랑하는 바바를 한눈이라도 보기 위해 문과 창문으로 몰려들었다.
푸나 센터를 대표해 사다시브 파틸이 바바께 백단향 화환을 걸어 드리고, 이렇게 와 준 데 대한 감사를 전했다. 신데와 캄블레가 프라사드가 담긴 상자들을 단상으로 가져왔고, 바바는 그것들에 손을 대어 축복했다. 프라사드는 애인자들이 다르샨을 마친 뒤 출구에서 나누어 주어졌다. 단상에서는 에루치가 바바의 오른쪽에 서 있었고, 마하라니 샨타데비는 그의 왼쪽에 앉아 있었다. 아디는 바바 뒤에 서 있었고, 메헤르지와 호샹 바루차 같은 다른 이들도 그 뒤에 함께 서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