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오후 늦게 바바가 말했다. "내가 침묵을 깨면 세상에 큰 격변이 있을 것입니다. 내가 침묵을 깬 지 1년 후에 나는 육신을 버릴 것입니다. 나는 엄한 주인이니, 여러분 모두 용기를 내어 어떤 일이 닥치든 맞서야 합니다.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앞으로 올 세월이 더 중요합니다."
한 헌신자가 개인적인 문제들로 깊이 낙담해 있었다.
바바는 그에게 "나의 뜻에 백 퍼센트 자신을 맡기십시오. 그러면 내가 모든 것을 돌보겠습니다."라고 확신시켜 주었다.
그 남자는 노력해 보겠다고 답했다.
이어서 바바는 하피즈를 칭송했다. "지난 2천 년 동안 하피즈 같은 시인은 없었습니다. 우르두와 페르시아의 모든 시인들이 그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왔습니다."
이 대화가 오가는 동안 생후 열 달 된 아기가 바바의 발치에서 놀고 있었다. 아기는 바바의 사드라를 꽉 붙잡고 이리저리 잡아당기고 있었다.
바바가 말했다. "머스트들도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 전혀 모른 채 나와 놀았습니다. 그들 중에는 긴 손톱으로 내 살을 찌르려는 이들까지 있었습니다! 머스트들은 다 자란 아기들입니다."
오후 2시에는 아흐메드나가르의 하비브 카왈이 두 시간 동안 카왈리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바바는 이를 매우 즐거워하며 하비브에게 자신의 손수건을 주었다. 오후 4시가 되자 모두 앞으로 나와, 떠나며 바바의 손에 입을 맞추었다.
다음 날 바바는 메헤라, 마니, 고허와 함께 잠나가르 하우스에서 봄베이의 러버들을 한 시간 넘게 만났다.
아내 메리가 세상을 떠난 뒤 몇 달 동안, 런던의 윌 배켓은 그녀 없이 살아가는 데 적응하기 어려워했고 건강도 좋지 않았다. 그해는 윌과 메리의 결혼 50주년이 되는 해였을 것이다.
바바는 그를 위로하려고 아디 주니어를 통해 많은 전보와 메시지를 보냈다. 예를 들면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내가 당신과 함께 있습니다." 같은 것이었다.
윌 배켓은 몸이 쇠약해 동서 모임에 참석할 수 없었고, 바바는 그 기간에 그에게 자신의 사랑을 확신시키는 전보를 보냈다. 바바는 또 몰리 이브를 통해 다르샨 때 자신이 걸었던 화환을 윌에게 보냈다.
1963년 5월 15일, 윌 배켓은 83세의 나이로 런던의 한 병원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
런던에서 온 몰리 이브의 전보에 답하며 바바는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윌의 별세에 관한 당신의 전보를 받았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대천사 윌과 메리 배켓은 영원히 내게 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