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는 이렇게 설명했다. "너희가 늘 나와 함께 있어도, 실제로는 나를 볼 수 없다." 자신의 뜻을 설명하기 위해 바바는 얼굴 앞에 손을 대고 가까이 앉아 있는 이들에게 물었다. "이제 너희가 내게 이렇게 가까이 있어도 내 얼굴이 보이느냐?" 그들이 아니라고 대답하자 바바는 손짓으로 말했다. "마야의 두꺼운 장막이 바로 이런 식으로 너희 시야에서 내 얼굴을 가린다. 하지만 걱정하지는 마라. 너희의 유일한 걱정은 어떻게 하면 나를 점점 더 사랑하고 더 순종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어야 한다."
메헤라의 생일에는 아흐메드나가르에서 온 일꾼들과 헌신자들 가운데 극소수만 불렸다. 사로쉬는 이 일에 대해 바바에게 불만을 털어놓았다. 이에 바바는 1963년 1월 13일 일요일 오후에 그들을 만나기로 정했다.
그날 아침, 우타르프라데시 출신의 저명한 49세 가수 베굼 아크타르가 아디와 메헤르지의 안내로, 푸나 전인도 라디오 방송국의 음악감독 골왈카르와 함께 메헤라자드에 왔다. 바바는 아크타르의 음반을 여러 장 가지고 있었고, 그녀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예술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앞서 1937년에서 1938년에 걸쳐 아디는 베굼 아크타르를 바바 앞에서 노래하도록 초청하며, 캘커타에서 아흐메드나가르까지의 왕복 여비를 부담하고 여행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하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그녀는 엄청난 사례금을 요구했고, 그때 바바는 아디에게 이렇게 전했다. "지금은 그녀를 부르지 마라. 언젠가 그녀가 스스로 올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스스로 찾아온 것이다!
골왈카르의 전갈에 따라 아크타르는 지난여름 구루프라사드에서 바바 앞에 나와 노래할 예정이었지만, 심한 병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이제 바바를 만난 베굼 아크타르는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마치 그녀가 여러 해 동안 바바와 내적으로 접촉해 온 사람처럼 보였다. 그녀는 바바에게 말했다. "당신의 부르심을 들은 날부터 저는 당신의 다르샨을 갈망해 왔고, 매일 당신의 사진 앞에서 특별한 가잘을 부릅니다."
그녀는 그 가잘을 바바 앞에서 부르게 해달라고 간청했고, 바바는 "나는 지금 은둔 중이어서 가잘을 들을 마음이 없다"고 대답했다.
베굼 아크타르가 거듭 간청하자 바바가 말했다. "4월이나 5월 중 아무 날이든 푸나에 와서 구루프라사드에서 네다섯 시간 공연하겠다고 약속하는 조건에서만 허락하겠다. 네가 동의한다면, 지금 가잘 한 곡은 듣겠다."
그녀는 크게 기뻐하며 사랑으로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 "가잘의 여왕"으로 알려진 그녀는, 하루 1,000루피를 받곤 하던 사람이었지만, 스스로 바바에게 와서 그를 위해 노래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듯 간청했다. 이것이 사랑의 경이로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