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랄라 마을 사람들은 1962년 11월 3일 토요일 오전 7시 30분에 구루프라사드에 도착했다. 바바는 베란다에서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안아 주었다. 또 그들이 바잔을 부르고 바바의 아르티를 올리도록 허락했다. 그들의 노래가 음정에서 벗어났을지는 몰라도, 그 마음은 사랑으로 가득했다. 바바는 그들 가운데 아이들에게 프라사드를 더 주었다. 한 시간 뒤 도착한 서양인 몇몇은 그 광경을 보며, 이 가난한 마을 사람들의 깊은 사랑의 표현에 감명을 받았다. 마을 사람들은 각자 다시 한 번 바바를 안은 뒤 집으로 돌아갔다.
군투르의 M. B. G. 사스트리는 1962년에 처음으로 바바를 만났다. 모임이 진행되는 동안 그는 감정이 북받쳐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바바는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당신 처지에 있었다면, 당신처럼 나를 사랑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오전 9시에 바바는 안으로 들어가 서양에서 온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홀에 앉았다. 그는 다음 날에는 시간이 없기 때문에 그날은 개별 그룹들을 만나겠다고 그들에게 알렸다. 바로 그때 친타 사르바라오, 마제티 라마모한 라오, 마니캴라 라오가 홀로 들어왔다. 바바는 그들을 서양인들에게 소개하며, 이들이 특별 열차로 안드라의 사랑하는 이들을 모두 데려왔다고 설명했다. 이 세 사람은 지난 사흘 동안 푸나에 있었지만, 그때까지 바바를 만날 기회가 없었다.
바바는 약 20년 전 자신이 만달리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고 했다. "먼 데서 나에게 오고 싶어 해도 나를 볼 수 없는 날이 올 것입니다."
이 말은 훗날 몰려올 큰 군중을 가리킨 것이었다.
바바는 안드라에서 온 이 세 사람을 안아 주며 농담했다. "이제 당신들 셋이 해야 할 유일한 일은 이곳에 비가 오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세 사람이 너무도 큰 사랑으로 바바를 안았기 때문에, 그들이 떠난 뒤 바바가 말했다. "내 팔에 힘이 빠졌지만, 한 시쯤이면 다시 사람들을 안을 만큼 기운이 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