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미르푸르에서 바바니 프라사드 니감의 아들이 멋쩍은 표정으로 방에 들어왔다. 그는 부모의 허락도 없이 봄베이에 갔다가, 거기서 지갑을 소매치기당해 돈을 모두 잃었다. 바바는 한동안 그를 만나고는, 나리만이 그의 귀향 여비를 마련해 주도록 했다.
소년이 방을 나가자 바바가 말했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대가족의 가장으로,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사랑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데 아들은 어떤가! 부모가 얼마나 걱정했겠는가.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는 봄베이에서 한창 신나게 지내고 있었다! 이게 영화 구경이 아니고 무엇인가? 우주의 날마다의 사건들은 영화와도 같다. 어떤 이는 행복을 느끼고 어떤 이는 비참함을 느낀다."
알로바가 불려왔고, 바바는 그에게 하피즈의 몇 구절을 페르시아어로 낭송해 달라고 했다. 그 시구의 뜻은 이러했다.
행복과 비참은 삶의 몫이며 이원성의 원 안에서 겪게 된다. 일단 이 원을 벗어나면, 이원성 안의 상반된 것들의 다툼은 그친다. 그러므로 행복도 비참도 아무 의미가 없다.
킬나니가 바바에게 말했다. "우리는 이것을 지적인 차원에서는 꽤 잘 이해하지만, 그렇게 살 수는 없고, 이 모든 것이 무의 유희에 지나지 않음을 알면서도 비참해지는 것을 어쩔 수 없습니다."
바바가 답했다.
"말로 아는 지식만으로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 가지는 기억하라. 비참과 행복이 무의 영역에 속해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면, 왜 언제나 행복하기를 택하지 않는가? 행복하게 지내라. 행복하게 지내려고 노력하라. 오직 하나님만이 존재하시고, 그 밖의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님을 알라."
가즈와니가 끼어들어, 독서를 통해 얻는 이해는 모호하며 나중에는 혼란스러워진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영적인 주제의 책들은 읽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만 사실입니다." 하고 킬나니가 말했다. "우리가 스승이신 바바와 함께 있을 때는 독서가 필요 없게 되지만, 그분에게서 떨어져 있을 때는 그분의 책을 읽고 그 주제들을 묵상하는 것이, 적어도 저에게는 삶의 참된 위안입니다."
바바가 말했다.
"진리는 결코 말로 표현될 수 없다. 그러나 말도 일정한 한계 안에서는 나름의 중요성을 지닌다. 독서의 효과는 어떤 책을 읽느냐와 그것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경전을 놓고 종교의 이름으로 다투는 것을 본다. 그것은 골수도 없는 앙상한 뼈다귀를 놓고 싸우는 개들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