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샨 일정이 끝난 뒤 바바는 넬므스를 따로 만나 무엇을 원하는지 물었다. 넬므스는 "당신을 그리스도로 보았습니다! 영원히 당신 발아래 있고 싶습니다!"라고 답했다. 바바는 때가 되면 부르겠다고 그를 달랜 뒤, 그때까지는 푸나에 머물라고 했다.
곧 바바는 아랑가온과 아흐메드나가르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한 채 메헤라바드로 돌아왔고, 푸나에서도 그의 거처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바바는 단식을 계속했고, 12월 27일부터는 액체를 마시는 간격을 34시간마다 한 번에서 40시간마다 한 번으로 늘렸다.
1923년 12월 31일 월요일, 바바는 베흐람지와 구스타지와 함께 메헤라바드를 떠나 그날 저녁 봄베이에 도착했다. 바바는 전날 가니와 람주에게 편지를 보내 로나블라역 플랫폼에서 만나라고 했다. 계속된 단식으로 바바의 평소 빛나던 건강은 크게 약해져 있었다. 은둔 중 겪은 과정이 그의 신체를 무너뜨린 상태였다. 바바는 이렇게 적었다.
나는 날이 갈수록 더 약해지고 있다. 어젯밤은 끔찍했고 오늘 아침의 나는 육신적으로 완전히 망가진 상태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내 손이 떨린다!
- 메르완
당연히 가니와 람주는 이 상태를 듣고 크게 놀랐다. 로나블라에 도착한 뒤 바바는 자신의 지시대로 그들이 준비해 온 뜨거운 코코아를 마셨다. 편지에 적힌 대로 그는 창백하고 쇠약해 보였고, 단식으로 거의 해골처럼 여위어 있었다. 그러나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바바의 기분은 꽤 밝아 보였다고 두 사람은 느꼈다. 바바의 허락 아래 람주와 가니는 다음 역인 칸달라까지 기차에서 그를 동행했다.
봄베이에서 바바는 은둔을 유지한 채, 바지프다르가 미리 지시에 따라 임대한 다다르 바루차 빌딩의 아파트에 머물렀다. 바루차 빌딩에서 1924년 1월 1일, 바바는 단식 간격을 40시간에서 24시간으로 줄이고 셔벗 향 물 한 잔만 마셨다.
이 시기 다울랏마이의 딸 메헤라는 여전히 사코리에 있었고, 수나마시의 딸 코르셰드가 친구이자 동행자로 함께 지내고 있었다. 봄베이에 자리를 잡은 뒤 바바는 굴마이를 사코리로 보내 두 소녀를 데려오게 했다. 바바는 메헤라를 코르셰드와 그녀의 부모와 함께 이라니 맨션에 머물게 했다. 시대는 기뻐했다. "푸루샤는 프라크루티를 곁에 두었다. 완전한 인간은 창조의 거울을 옆에 두었고, 사랑하는 이의 심장을 닮은 이 순수한 형상은 정원 전체에 노래를 울리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