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독일에서는 베를린 위기가 극에 치닫고 있었다. 바바가 메헤라자드로 돌아온 지 일주일도 안 되어 도시가 분단되었고, 공산주의자들은 동독과 서독을 가르는 베를린 장벽 건설을 시작했다.
바바는 칩거 중이어서 여행 계획도 없었지만, 그의 여권은 1961년 8월 말에 갱신되었고 6년 뒤인 1967년 8월 말에 다시 갱신되었다.
1961년 9월 14일 목요일, 바바는 가난한 아란가온 마을 사람들에게 잔치를 베풀도록 했다. 파드리가 그 준비를 감독했다. 바바는 그날 아침 9시 30분, 에루치와 프랜시스, 카이코바드를 대동하고 먼저 쿠쉬루 쿼터스에 들렀다. 그는 아디에게 자신의 칩거가 계속될 것이며, 아디는 부를 때만 메헤라자드에 오라고 말했다. 바바는 굴마이와 피로자, 페람을 만났다. 당시 78세였던 굴마이는 대장암을 앓고 있었다. 그녀는 마스타니처럼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물을 끼얹곤 했다. 그녀는 종종 빛과 자그마한 요정 같은 형상들이 보인다고 말했다. 바바는 그녀를 안아 주며 위로했다. 피로자가 바바와 함께 머물고 싶다고 하자, 바바는 자신의 칩거가 끝난 뒤에 다시 물어보라고 했다.
그 후 바바는 메헤라바드로 가서 그곳의 마을 사람들을 만났다. 몇몇 신자들이 그의 앞에서 바잔을 불렀다. 그날 늦게 음식이 나오자, 모인 사람들은 "아바타 메헤르 바바 키 자이!"를 외치며 잔치를 시작했다.
로워 메헤라바드에서 바바는 패밀리 쿼터스에 있던 바우의 가족을 불러오게 했다. 바바가 푸나에 있을 때 바우의 아들 메헤르나트는 황달로 앓고 있었다. 어느 날 밤 그의 피부가 짙은 노란빛으로 변했고 상태가 위중해졌다.
그날 밤 바우가 야간 당번을 서고 있을 때, 바바가 그에게 물었다. "라마에게서 편지가 왔습니까? 메헤르나트는 어떻습니까?"
바우가 대답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녀에게서 아무 편지도 받지 못했습니다. 편지를 쓰지 말라는 것이 당신의 명령입니다."
바바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밤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는 몇 분 간격으로 바우에게 "메헤르나트가 죽으면 당신은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바우가 말했다. "아닙니다. 저는 그 때문에 슬퍼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그렇지 않겠지만 라마는 그럴 것입니다." 하고 바바가 말했다.
그들이 구루프라사드에 머무는 동안에는 메헤르나트에 관한 소식이 없었지만, 메헤라자드로 돌아와서야 그가 중병을 앓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바가 구루프라사드에서 그토록 안절부절못했던 바로 그 밤이 메헤르나트의 상태가 악화된 밤이었다. 파드리가 그를 동종요법 약으로 치료했고, 그는 수혈을 받지 않고도 회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