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간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단식이 끝난 뒤 사랑하는 이들이 다시 바바를 만나 자기 경험을 이야기할 기회가 생기면, 그들은 밤에 굶주림 때문에 미칠 것 같았지만 갑자기, 그것도 까닭을 알 수 없게, 뱃속이 가득 찬 듯 느껴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바바는 자신이 안절부절못하며 무엇인가를 먹음으로써 그들의 허기를 덜어주고 있었다. 이것이 그의 릴라(신성한 놀이)였지만, 그들이 그것을 어떻게 알거나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그것을 목격한 것은 곁에서 밤샘하며 그를 지켜본 사람들뿐이었다.
12월 28일 메헤라자드 본관은 분주했다. 그날부터 여성들이 매일 바바에게 터키식(젖은 천을 사용하는) 증기목욕을 시켜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30일에는 메헤루가 바바를 위해 라일라가 낙타 등에 달고 다니는 좌석 같은 자리를 만들었다. 그 증기목욕은 성공적이었고, 그 뒤 바바는 한 달 반 동안 목욕하지 않았다.
이 무렵 프란시스는 간헐열을 앓아 1961년 1월 5일 메헤라바드로 옮겨졌고, 22일 프란시스가 메헤라자드로 돌아올 때까지 돈이 그를 돌보았다.
1961년 1월 15일 일요일은 21일 단식과 하나님의 이름 반복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날 메헤라자드의 남녀 만달리는 모두 바바의 지시대로 24시간 단식했다. 단식은 끝났지만, 만사에 대한 바바의 초연함은 전보다 덜 두드러지기는 해도 계속되었다.
그날 바바는 오랜만에 아디 시니어와 람주를 만났다. 람주는 아바타 메헤르 바바 트러스트와 관련된 법적 문제와 면세 문제에 쉬지 않고 매달리고 있었고, 바바는 19일에 다시 그들과 진척 상황을 논의했으며, 1월 23일과 2월 2일에도 그렇게 했다. 파드리와 돈은 1월 27일에 불려왔다.
1961년 2월 9일 목요일(조로아스터 달력에 따른 바바의 생일), 바바는 25일의 생일을 위해 다음 메시지를 주었다:
나는 언제나 인류 가운데서 잃어버려졌다가 다시 발견되는 바로 그 하나입니다. 나를 잃게 하는 것은 당신 자신에 대한 당신의 사랑이고, 나를 찾게 하는 것은 나에 대한 당신의 사랑입니다. 무엇보다도 나를 사랑하십시오. 지금 내가 당신들 가운데 있는 이때, 나는 진정한 나 그대로 가장 쉽게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2월 15일에는, 바바가 3월 중순부터 몇 달간 푸나로 가 있을 예정이지만 일정한 제한이 부과된다는 내용의 회람이 발행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