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랑가의 바부 람프라사드가 자이푸르에서 온 조각가와 함께 왔다. 그는 바바에게 그 조각가를 위해 포즈를 취해 달라고 청했고, 람프라사드의 사랑 때문에 바바는 승낙했다.
바바는 가끔 그를 위해 앉아 주었지만, 그러면서도 "내게 무슨 사랑이 있단 말입니까? 이건 성가신 일입니다. 그래도 내 사랑하는 이들의 사랑을 저버릴 수는 없습니다." 하고 "불평"하곤 했다.
1960년 5월 15일 일요일은 푸나에서 또 한 번 공개 다르샨이 열린 날이었고, 오전 7시 30분부터 11시까지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 하미르푸르에서 온 많은 남녀가 바바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며 구루프라사드로 들어왔다.
누세르완 사타는 자신이 설립을 도운 사회봉사 단체인 '억눌린 이들의 벗 연맹(Friends of the Depressed League)'에서 여러 해 동안 일해 왔다.1 그가 한 번 구루프라사드에 왔을 때, 바바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억눌린 이들을 섬기는 일에 자기 삶을 바쳐야 하며, 버림받고 짓눌린 사람들 안에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소위 천대받는 계층은 나에게 매우 소중합니다. 약 35년 전 메헤라바드에서 나는 하리잔[불가촉천민] 아이들을 목욕시키고, 먹이고, 옷 입히곤 했습니다. 나는 심지어 그들의 변소까지 청소하곤 했습니다.
최근 하미르푸르 지구에서 아주 좋은 일이 있었습니다. 내 사랑하는 이들은 계급과 피부색, 신조를 막론하고 청소부의 초청으로 사르사이에 모여 한 바바 가족으로 함께 지냈습니다. 그들은 나에 대한 사랑을 통해, 다른 많은 이들이 여러 해 동안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루었습니다.
바바의 사진을 늘 예배하던 한 신자에게 바바는 이렇게 말했다. "가슴을 다해 내 사진에 푸자[예배]를 드리되, 그것을 자기 마음속에서 할 수 있게 될 때까지 계속하십시오. 당신 안에서 나를 보게 될 때까지 바바를 더욱더 사랑하십시오."
어느 날 한 산스크리트 학자가 와서 상카라차리야의 찬가 몇 편을 낭송했다.
바바가 말했다. "그 구절들을 번역하지 마십시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그 찬가의 나드[소리, 낭송]를 듣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은 나에게서 나온 것이기에 나를 기쁘게 합니다."
한편 메헤라바드에서는 바우의 딸 쉴라가 홍역에 걸렸고, 파드리가 그 사실을 바바에게 알렸다. 바바는 바우에게 그녀를 보러 가고 싶은지 물었다. 바우가 대답했다. "제가 가면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저는 여기서 제 의무를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바우는 가지 않았고, 며칠 뒤 파드리는 쉴라가 회복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바바가 바우에게 말했다. "당신이 갔더라면 쉴라는 죽었을 것입니다."
각주
- 1.누세르완 사타(에루치의 외삼촌)는 인도 독립운동 당시 마하트마 간디와 함께 활동했던 인물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