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는 켄모어에게 바바가 어떻게 걷는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켄모어가 대답했다. "바바는 놀랍도록 잘 걸으십니다. 그것은 오직 그분에게만 가능한 일입니다. 당신은 내가 이해하는 만큼 그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전에 내가 바바의 상태를 살펴보았을[진찰했을] 때라면, 그분이 다시 걷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을 것입니다!"
1958년에 미국을 떠난 뒤, 바바는 켄모어에게 이렇게 썼다. "당신은 내 만달리의 한 사람입니다. 나는 내 만달리에게 모든 것을 기대하고, 내 만달리는 나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메헤라자드에서 한번은 켄모어가 말했다. "바바, 당신은 사랑의 화신이십니다."
바바가 대답했다. "나는 아주 엄하기도 합니다. 특히 내 만달리에게는 그렇습니다. 나는 만달리에게 대하는 모습과 세상에 대하는 모습이 같지 않습니다. 나는 온 세상에 내 사랑을 주지만, 내 만달리는 내 엄한 면도 마주해야 합니다."
켄모어는 매일 아침 푸카르가, 매일 저녁에는 파드리가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켄모어는 새로운 발명품인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가져왔는데, 이 카메라는 60초 안에 사진이 저절로 현상되었다. 그와 파드리는 바바와 만달리, 아쉬람의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켄모어는 테이프 녹음기도 가져왔는데, 해리가 늘 그것을 곁에 두고 다녔기 때문에 바바는 그것을 "해리의 아기"라고 불렀다. 바바는 종종 만달리 홀에서 켄모어에게 자기 앞에서 스승의 기도를 암송하라고 했고, 켄모어는 우렁찬 목소리로 그렇게 했다. 해리는 또한 바바가 좋아하던 "비긴 더 비긴", "스와니"와 다른 노래들을 즐겨 불렀다. 때때로 바바는 켄모어와 만달리를 본관으로 데려가 힌디어, 우르두어, 영어 레코드를 들려주곤 했다.
이 시기 오후마다 바바는 만달리와 정원 소년들, 요리사, 그리고 운전사 셰이크와 함께 세븐 타일 게임을 했다. 바바는 의자에 앉아 거기서 타일 더미를 향해 공을 던지곤 했다. 라마와 바이야라는 두 하인 소년도 자주 이 게임에 참여했는데, 라마는 자기 차례가 오면 좀처럼 빗나가지 않았다. 샹카르라는 또 다른 정원 소년도 꽤 잘했으며, 이 활기찬 게임들 동안 소년들은 바바와 가까이 함께하는 행운을 누렸다.
켄모어는 시각장애인이었지만 그도 차례가 되면 공을 던졌다. 한번은 그가 조준해 공을 던지자, 파드리가 바바의 신호를 받고 타일 더미를 흩어 놓았고, 켄모어는 자신의 "명중!"에 크게 기뻐했다. 그 뒤로 그는 연습했고, 때로는 정말로 더미를 맞히기도 했다. 누군가가 타일 더미를 제대로 맞히면, 켄모어는 "저 친구에게 시가 두 개 주시오!" 하고 외치곤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