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8월 16일, 봄베이에서 한 달 넘게 머문 뒤 바바는 베흐람지, 바르솝, 구스타지, 아디, 루스톰과 함께 기차로 로나블라에 갔다. 가족이 로나블라에 살던 람주와 가니가 마드니 씨 방갈로에 머물도록 주선했고, 압둘 타얍은 바바가 쓸 차를 빌려주었다. 로나블라에서 보낸 7일은 편안하고 즐거웠다. 스승은 만달리와 담화를 나누고, 카드놀이를 하고, 축음기 음반도 들었다. 그들은 칸달라 폭포와 왈반 호수, 부시의 호수까지 하이킹을 했다. 바지프다르와 사다시브 파틸도 합류했고, 시원하고 쾌적한 몬순 날씨와 바바의 좋은 기분 덕분에 만달리의 사기는 높았다. 8월 21일 바바는 가니와 람주의 집도 방문했고, 그 가족들은 바바의 다르샨을 받는 은총을 누렸다.1
8월 22일 수요일 오후 5시, 바바는 소지품을 모두 챙겨 차로 푸나로 향하며, 가니와 람주에게 마드니 씨에게 방갈로가 비었다는 편지를 쓰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다음 날 람주는 바바가 만달리와 함께 다시 그 방갈로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람주는 음식 준비가 걱정돼 서둘러 그 집으로 갔다.
바바는 람주를 보자 화를 내며 말했다. "사다시브가 나와 다른 이들을 너무 소홀히 해서 어젯밤 자정에 다시 여기로 돌아왔다. 하지만 사다시브와 카스바 페트 사람들을 불쾌하게 하지 않으려면 곧 푸나로 돌아가야 한다."
긴 논의 끝에 바바는, 푸나 캠프 지역의 압둘라 자퍼 집에 머물고 사다시브에게 만달리 식사를 맡기도록 하자고 결정했다. 이 시기에도 바바는 여전히 커피만 마시고, 많아야 가끔 채소를 조금 먹는 정도였다. 람주는 필요한 준비를 하려고 즉시 푸나로 떠났다. 압둘라 자퍼(람주의 매부)는 기꺼이 자기 방갈로를 바바에게 내주었다. 처음에는 사다시브도 일행의 식사를 제공하겠다고 했지만, 나중에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바바가 압둘라 집에 머무는 것을 못마땅해했는데, 스승이 자기와 함께 머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바바는 압둘라의 집으로 돌아왔다. 8월 23일은 모하람 아홉째 날이었고, 바바는 압둘라가 자리를 마련한 모디 박사 진료소에서 타지아 행렬을 지켜보았다.2 바바는 다울랏마이와 그의 딸 메헤라, 수나마시, 코르셰드를 특별히 푸나로 초대해 함께 행렬을 보게 했다.
각주
- 1.가니의 가족은 딸 넷과 아들 하나로 늘어났고, 람주와 그의 아내는 결국 아들 여섯과 딸 둘을 두었다.
- 2.모하람은 예언자 무함마드의 손자 후세인의 순교를 기리는 이슬람 성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