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게는 아쉬운 듯 말했다. 빛은 사라지고 나방들만 남았다. 나방들은 불꽃으로 왔지만, 자신이 나방임을 알게 되자 불꽃은 사라졌다. 그러나 나방이 빛 없이 어떻게 남아 있을 수 있겠는가. 이제 삶 자체가 영원한 빛을 찾아 그 안에 합쳐지려는 끝없는 탐색이 되었다.
밤새 열차를 타고 바바와 만달리는 1923년 7월 7일 토요일 새벽 5시 30분 봄베이 다다르역에 도착했다. 역에는 구스타지와 부르조르 P. 다히왈라가 기다리고 있었고, 일행은 오전 7시 25분 나식행 열차를 타기 위해 곧바로 다른 역으로 이동했다.1 메헤르 바바의 도착 소식은 도시 전역의 추종자들 사이에 퍼져 있었다. 부르조르 외에도 나발과 디나 탈라티, 디나의 부모인 호르무스지와 루파마이 카라니, 차르니 로드의 헌신자들이 다다르에 나와 있었다. 부르조르가 기차에서 먹을 밥과 달을 가져왔고, 바바는 각 사람을 다정하게 맞았다. 마사지도 역에서 바바를 만나 다시 만달리에 합류했다. 펜두는 퀘타로 떠나 쉬며 건강을 회복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기차 안에서 바바는 남자들에게 음식을 나눠주었다. 그는 커피만 마셨고, 몇 달째 이어진 액체 단식을 깨지 않았다. 같은 객실의 한 파르시가 오랫동안 바바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는 바바의 찬란한 아름다움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압도된 채 스승의 발아래 엎드렸다. 그가 진정을 되찾자 바바는 자비롭게 그를 껴안고 안부를 물었다.
일행은 오후 2시 45분 나식에 도착했고, 나식 출신인 사이예드 사헵이 나와 맞이했다. 그들은 통가를 타고 노만바이의 방갈로로 갔다. 사이예드 사헵이 며칠 머물 임시 숙소를 마련해 둔 곳이었다. 그 집은 역에서 6마일 떨어져 있었고 통풍이 잘되며 넓었다.2 사이예드 사헵은 집에서 쌀, 달, 시금치를 가져왔지만 만달리가 쌀과 달만 먹으라는 엄격한 지시를 받고 있었기에 바바는 시금치를 돌려보냈다. 그래도 식사는 맛있었고, 여러 날 만에 만달리는 향신이 든 달을 다시 즐겼다.
7월 8일 바바는 구스타지, 베흐람지, 그리고 전날 밤 도착한 문시지와 함께 장기 숙소를 찾으러 나갔다. 그는 강가푸르 근처 강변의 한 장소를 고른 뒤, 다음 계획을 설명하려고 노만바이 집으로 돌아왔다.
각주
- 1.파르시인 다히왈라 가족은 바바가 만질-에-밈에 머물 때 옆집에 살고 있어서 바바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 2.노만바이는 카스바 페스의 토디 가게 시절부터의 초기 추종자 중 한 사람으로, 나식에서 성공한 상인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