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는 결국 서방에 대한 마지막 방문이 된 여정을 위해 인도를 떠나고 있었다. 1958년 5월 15일 목요일, 바바와 여성 만달리는 메헤르지의 시보레를 타고 푸나에서 봄베이로 이동했다. 남성 만달리는 나리만의 앰배서더와 아디의 시보레를 타고 뒤를 따랐다. 그날 밤 바바는 에루치, 아디 시니어, 나리만, 돈을 대동하고 TWA 881편으로 새벽 12시 10분 산타크루즈 공항을 떠나 뉴욕으로 향했다. (여성 만달리는 바우와 마찬가지로 18일에 메헤라자드로 돌아갔다.) 봄베이와 푸나, 나브사리에서 온 많은 러버들이 바바를 배웅하러 공항에 나왔고, 바바는 모두를 만나 사랑으로 흠뻑 적셔 주었다. 바바는 무척 기분이 좋았다. 이전에 그러지 말라고 지시했음에도 불구하고, 공항에서 바바를 위한 아르티가 거행되었고 그에게 화환도 걸어 주었다.
일행은 바바를 바라보고 있었고, 바바는 말했다. "왜 나를 보고 있습니까? 나의 무한을 보십시오!"
그는 덧붙였다. "나는 결코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습니다. 나는 언제나 진실한 연인들의 가슴속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카이로에서 한 시간 머문 뒤, 그들은 여정을 계속했다. 비행기를 갈아타야 하는 로마에서는 4시간 30분의 경유 시간이 예정되어 있었다.
바바가 물었다. "세 시간이나 네 시간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하겠습니까?"
돈은 경유하는 동안 환자가 쉴 수 있도록 로마 공항에 방을 마련해 달라고 기장이 미리 무전해 주기를 요청했다. 돈은 이탈리아어로 말하면서 자신이 아주 중요한 인물을 돌보는 영국인 의사라는 인상을 그들에게 주었다. 돈은 공항에서 방을 제공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도착하자 그들은 휠체어를 든 두 명의 안내원을 만났는데, 에루치가 자신이 휠체어를 밀겠다고 했는데도 그들은 바바를 호송하겠다고 우겼다. 그들은 영어를 하지 못했고, 이탈리아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돈뿐이었다. 그들은 바바를 바깥의 플랫폼으로 밀고 갔고, 돈이 방 문제를 확인하러 간 사이 만달리는 사이렌을 요란하게 울리며 다가오는 구급차 소리를 들었다. 구급차는 바바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두 남자가 아주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바바를 들것에 옮겨 구급차에 실었다. 에루치는 그들이 하는 일에 말로 항의했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아 그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에루치는 바바 곁의 구급차 안으로 뛰어올랐고, 그들은 3마일 떨어진 병원으로 실려 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