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본성의 경계에서 벗어나지 않고서야, 어떻게 진리의 길을 걸을 수 있겠는가?
바바가 설명했다:
이 길은 이루 말할 수 없고 견디기 힘든 고난과 고통으로 가득합니다. 요기들과 성자들조차 나의 실재의 상태를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하피즈는 "우리 본성의 경계에서 벗어나라" 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본성이란 무엇입니까? 지금은 형태와 의식의 진화라는 주제를 다시 되풀이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이것들에 관해 책들에서 이미 많이 설명했습니다. 예를 들어 인간 아이의 탄생에서부터 시작해 봅시다. 그 탄생은 그 아이의 과거 카르마 때문입니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전생에서 얻은 산스카라를 경험하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그 아이의 본성은 무엇이겠습니까? 물론 그 아이의 본성은 과거의 산스카라에 따라 정해질 것입니다. 그 아이는 전생에서 쌓은 산스카라에 따라 행동하고, 느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달리 길이 없으니 그 산스카라를 겪어야 합니다. 그것이 필연의 법칙입니다.
이 냉혹한 필연의 원칙에 더해, 환경적 조건들도 그 아이가 과거의 산스카라에 따라 행동하고 느끼고 생각하도록 돕습니다. 아이는 이 세상의 빛을 보자마자 날마다 나이를 먹기 시작합니다. 태어나자마자 울 수밖에 없습니다. 젖을 먹어야 합니다. 점점 더 자라야 합니다. 이름도 가져야 합니다. 그 아이의 성별, [성격, 인격, 성향] 등은 필연의 원칙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 아이는 자기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 아이는 그 모든 것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그 아이는 자신이 태어났다는 사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그 아이는 성별도 있고 이름도 있으며, 울고, 먹고, 마시고, 나중에는 학교에 다니며 삶을 즐기거나 고통을 겪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 아이의 본성 때문이지 "자연[환경]" 때문이 아닙니다.
하피즈는 아이의 본성을 가리켜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필연의 법칙입니다. 당신이 스스로 만들어 키워 온 바로 그 본성이, 자신을 남자나 여자라고, 또 병들었거나 건강하거나 아름답거나 못생긴 몸을 가졌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 본성은 당신이 배고프다거나, 튼튼하다거나, 몸이 좋지 않다거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