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하바스 안에서 여러분이 행복하게 지내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마지막 사하바스가 될 것이니, 여러분이 행복하게 지내며 나의 사랑을 가능한 한 많이 받아 가기를 바랍니다. 이 기회를 최대한 살리십시오. 나는 사랑의 대양입니다. 이 대양에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랑을 끌어내는 것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나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내가 여러분에게 설명할 일은 아닙니다. 이 점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십시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고, 여자도 남자를 사랑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남자가 여자에게, 또는 여자가 남자에게 서로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말해 줄 수 있겠습니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나는 여러분에게 나의 사랑을 가능한 한 많이 주고 싶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가장 쉬운 길은 여러분이 여기 있는 동안 집과 가족과 세상일을 잊고, 나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나의 사랑을 최대한 받아들이고 싶다면, 이것이 첫 번째로 필요한 일입니다. 두 번째는 완전히 마음을 놓고 지내며 밤마다 충분히 쉬고 푹 자서, 매일 나의 사하바스에 올 때 상쾌한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내 앞에서 꾸벅꾸벅 졸면 나를 놓치게 되고, 비록 매일 참석하더라도 그 졸음 때문에 내 현존 앞에 있지 못하게 됩니다. 사하바스라는 말의 뜻은 친밀한 동반입니다. 이런 동반 관계를 이루려면 여러분은 나를 대할 때 스스럼이 없어야 합니다. 나와 가능한 한 친밀해지려고 해야 합니다.
니란잔 싱 교장이 멀찍이 앉아 있었는데, 그를 본 바바가 물었다. "나에게서 숨으려 하십니까?"
니란잔 싱이 웃었다.
계속해서 바바가 말했다:
사하바스는 러버들 사이에 주고받는 친밀함입니다. 러버와 사랑하는 님 사이의 이 주고받음을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설명과 담론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가장 깊은 친밀함 속에서만 성립하는 사랑의 존엄을 훼손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설명하고 싶습니다. 곧 육체적 동반입니다.
약 한 달 전 나는 봄베이에서 가까운 헌신자들에게 사하바스와 다르샨을 주었습니다. 그 사하바스는 오후에 있었습니다. 사하바스 프로그램에 들어가기 위해 내가 차에서 내릴 때, 다른 두 사람도 함께 내렸습니다. 그들은 절뚝거리고 있었습니다. 알다시피 요즘 나는 지팡이에 의지해 걷습니다. 그 두 절뚝거리는 사람은 호마 다다찬지와 그의 형제 다라였습니다. 한 사람은 내 한쪽에, 다른 한 사람은 다른 쪽에 섰고, 두 사람 다 내 곁을 함께해 주었습니다. 다라는 발을 삐었고, 호마는 다리 수술 때문에 절뚝거렸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 다 절뚝거리면서 내 곁을 걷게 된 것입니다. 사하바스는 이런 종류여야 합니다. 곧 육체적 동반입니다.
[모두가 웃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