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의 동의로 봄베이 센터 총무인 소랍지 시간포리아가 봄베이에서 다르샨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바바는 1957년 12월 20일 오전 9시 30분, 메헤르지의 차에 여성 만달리와 함께 타고 메헤라자드를 떠났다. 에루치, 바이둘, 바우, 사박은 와만이 운전하는 아디의 차로 갔다. 그들은 다시 아시아나에 머물렀고, 밤에는 남자들이 루파마이의 집에서 잤다. 바바는 나리만, 아르나바즈, 케이티가 해놓은 준비를 마음에 들어 했고, 그들의 아파트에서 아주 집처럼 편안함을 느꼈다. 아르나바즈는 주된 응접실에 바바를 위한 침대를 마련해 두었다.
시간포리아는 처치게이트의 넓은 순데르바이 홀에서 다르샨을 주선했다. 푸나 바잔 만달리와 다른 지방에서 온 사랑하는 이들도 참석해 있었다. 바바는 12월 22일 일요일 오전 8시에 홀에 도착했고, 늘 그렇듯 환호 속에 따뜻한 영접을 받았다. 홀은 사람들로 꽉 찼다. 에루치와 아디의 어깨에 손을 얹어 몸을 지탱한 채 바바는 단상에 올라, 합장하고 모인 이들에게 인사했다. 부르조르 메타가 구자라티어로 스승의 기도를 낭송한 뒤 바바는 안락의자에 앉았다.
남녀 수백 명이 따로 줄을 서서 그의 앞을 지나가며 다르샨이 시작되었다. 마두수단과 한 카왈이 번갈아 음악을 이어 갔고, 봄베이의 유명한 가수 데벤드라도 공연했다. 바바는 그의 재능을 높이 평가했다. 정오에 다르샨이 끝났을 때 거의 3,000명이 아바타와 접촉하는 행운을 누렸다. 프로그램을 마무리하며 먼저 구자라티어 아르티가, 이어 힌디어 아르티가 불렸다.
참석자 가운데에는 우간다에서 온 다울랏 싱 박사의 조카 트릴록 싱도 있었는데, 인도행 비행기가 지연되는 바람에 늦게 도착했다. 바바는 그가 왔는지 자주 물었다. 트릴록 싱은 메헤라바드의 사하바스 프로그램들에 참석한 적이 있었고, 아프리카에서 대중 다르샨을 베풀어 달라고 바바를 초대한 적도 있었다. 그는 아홉 살 아들 하르딥을 포함한 온 가족을 봄베이로 데려왔고, 모두 헌신적인 추종자가 되었다.
오후에는 바바의 가까운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하스만 홀에서 더 작은 모임이 열렸다.1 그것은 다르샨 프로그램이라기보다 사하바스에 더 가까웠다. 바바가 특히 좋아하던 카왈 가운데 한 사람인 셰이크 히다야트 칸이 아우랑가바드에서 특별히 불려왔다. 바바는 오후 4시쯤 홀에 도착했는데, 앉자마자 한 여성이 청중석에서 달려나와 그의 발에 머리를 댔다.
바바는 말했다. "지금은 절을 하거나 화환을 바칠 때가 아닙니다. 다르샨 프로그램은 끝났습니다. 나는 지금 사하바스를 위해 여기 있습니다."
각주
- 1.하스만 홀은 불라바이 데사이 로드의 브리치 캔디 맞은편에 있었으며, 불라바이 데사이 메모리얼 홀로도 알려져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