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해리에게, 그가 여기 있으면서 나를 돌보는 동안에는 그가 시키는 대로 하겠고, 그가 없는 동안에는 그의 지시를 따르려고 노력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게는 해야 할 일이 있으므로 그것을 온전히 실행하겠다고는 약속할 수 없다. 그는 자기 일을 만족스럽게 해냈고, 나는 내 일을 해야 한다. 나는 인류를 위해 이 몸을 취했으며, 인류에 대한 사랑에서 해야 할 일을 위해 이 몸을 써야 한다. 그러므로 몸을 돌보느라 내 일에 지장이 생길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한편으로는, 올 한 해 내 앞에 놓인 일의 부담을 이 몸이 견딜 수 있도록 충분히 돌봐야 한다.
나는 두 가지 이유로 동서 합동 사하바스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첫째, 내가 육체적으로 불편한 상태이니 그것은 내게 큰 무리와 피로가 된다. 둘째, 그런 상태에서도 그것을 하게 되면, 내가 사하바스를 통해 주고자 하는 것을 내 사랑하는 이들에게 충분히 줄 수 없고, 그들도 내가 그들에게 주고 싶은 모든 것을 받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나는 사하바스를 따로 주기로 했다. 동양인들에게는 인도에서, 서양인들에게는 머틀 비치와 호주에서 줄 것이다. 나는 2월에 동양 사하바스를 줄 것이며, 그들의 사랑의 신체적 표현, 즉 화환을 걸어 주거나 포옹하는 일 등을 켄모어 박사의 조언과 지시에 맞게 조정해 달라고 요청할 것이다. 사하바스에 참석하는 동양인의 수는 1400명으로 제한되었다. 네 그룹 대신 각 700명씩 두 그룹인데, 한 그룹은 힌디어와 마라티어를 쓰는 연인들이고 다른 한 그룹은 구자라티어와 텔루구어를 쓰는 연인들이다.
나는 1958년 5월에 서양의 나의 사랑하는 이들에게 반드시 사하바스를 줄 것이다. 머틀 비치에서 15일, 호주에서 5일이다. 나는 어떤 종류의 홍보도, [공개] "오픈 데이" 프로그램도, 그런 의미의 "방문객"도 원하지 않는다. 그 사하바스는 내 사하바스를 위해 인도에 오기를 원했던 사람들, 즉 오려고 했던 이들과 올 수 없었던 이들 모두를 위한 것이며, 또한 나를 사랑하고 기꺼이 내 말에 순종하며 사하바스에 참석하기를 원하는 다른 이들을 위한 것이다.
1958년 7월 15일 이후에는 더 이상 사하바스도, 집회도, 대규모 다르샨도 없을 것이다. 나는 7월 15일 이전에 내 육체적 상태와 외적 상황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 모든 것을 해야 한다.
다음 날 미국과 유럽, 호주의 연인들은 바바의 결정을 전보로 통보받았는데, 그 안에서 바바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의 신적 지식 안에서는 하나님으로서, 그리고 켄모어 박사의 판단을 따르는 인간 환자로서, 인도에서의 동서양 합동 사하바스는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고 결정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