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달리는 그날 버스로 메헤라자드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꾸리느라 바빴지만, 바바는 사바크와 알로바를 불러들여(바이둘은 먼저 가 있었다) 푸카르를 놀리고 부추긴 일을 꾸짖었다.
벌로 바바는 알로바에게, 푸나를 떠날 때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십시오. 당신이 걸으면 푸카르가 저녁을 소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 명했다.
1957년 6월 10일 월요일 이른 아침, 바바는 여성 만달리와 함께 푸나를 떠나 메헤라자드로 향했다. 아디 시니어가 다나파티 박사, 에루치, 구스타지, 사바크를 데려왔다. 데슈무크(나그푸르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쿠마르, 푸카르를 포함한 나머지 남성 만달리는 버스로 이동했다. 쿠툼바 사스트리도 아흐메드나가르로 왔고, 이틀 뒤 메헤라바드에서 아랑가온 헌신자들의 바잔 프로그램이 열릴 예정이었기 때문에 그와 다나파티는 쿠쉬루 쿼터스에 머물렀다. 메헤라자드에서 바바는 위층 침실을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다.
발락 바그완이라는 열일곱 살의 젊은 힌두교도는 어린 신으로 여겨졌고, 라이푸르에 많은 헌신자를 두고 있었다. 바그완은 압둘 마지드 칸에게 메헤르 바바의 다르샨을 받으라는 권유를 받았다. 마침내 압둘 마지드 칸은 바그완을 라이푸르에서 바바에게 보내 왔다. 그 청년은 6월 12일 아침 다르샨 직전에 메헤라자드에 도착했다. 바바는 그 청년과 만달리를 사로쉬의 차에 태우고 메헤라바드로 갔다. 가는 길에 발락 바그완은 "해가 져서 우리가 더위를 느끼지 않게 될 것"이라고 설명하며 신비로운 몸짓으로 계속 태양을 가리켰다. 바바는 그의 익살을 즐거워했지만, 더운 날씨가 조금도 누그러지지는 않았다!
라마와 쉴라, 메헤르나트 칼추리는 5월 21일 패밀리 쿼터스로 이사해 왔다. 라마의 남동생 디라지도 바바의 지시에 따라 그들을 나그푸르에서 데려온 뒤 며칠 더 머물렀다. 바바는 그들을 만나러 갔다. 라마는 자신들을 불러 준 그의 자비에 너무 감사한 나머지 울음을 터뜨렸다.
바바는 그녀를 껴안으며 안심시켰다. "내가 당신을 이렇게 내 가까이에 불렀으니 당신은 얼마나 복된 사람입니까. 어떤 일도 결코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가 당신과 함께 있습니다."
바우를 가리키며 바바는 메헤르나트에게 물었다. "저 사람은 누구입니까?"
메헤르나트는 아버지를 거의 본 적이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반응에 바바는 호탕하게 웃었다.
바바는 메헤라바드 홀로 가서 아랑가온 마을 사람들에게 다르샨을 주고, 푸나의 다른 그룹들에게 했던 경고를 되풀이했다.
역시 그 자리에 와 있던 안드라의 다나파티와 쿠툼바 사스트리에게 바바는 말했다. "이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가난하지만 그들 안에는 내 사랑이 있습니다."
펜두는 여전히 몸져누워 있어 걸을 수 없었다. 바바는 돈을 메헤라바드로 보내 펜두가 목발에 의지해 걸어보도록 도우라 했다. 5월부터 바바는 목발 사용을 그만두고 남성 만달리 두 사람의 팔에 의지해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바바는 펜두에게 다가오는 사하바스에 대해 설명하고 그 날짜를 확인한 뒤 메헤라자드로 돌아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