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센터 일꾼들과 함께 바바는 카르베 로드의 데칸 짐카나에 있는 다블레의 가죽 공업 협동조합을 방문했다. 다블레는 바바의 오랜 러버였다. 공장 직원들은 바바를 열렬히 환영하며 그를 위해 특별히 장식해 둔 자리로 안내했다. 수바드라가 노래하는 동안 바바는 그들에게 다르샨을 주었다. 모든 이에게 기쁨을 표하고 축복한 뒤, 바바는 캄라 네루 호스텔로 가서 그곳의 하리잔 아이들과 학생들을 방문했다. 호스텔 서기이자 P. N. 라즈보즈라는 이름의 국회의원이 바바를 맞이하고 몇 마디 했다. 어린 소녀 두 명이 마라티어 바잔을 불렀고, 바바는 아이들이 그의 다르샨을 받도록 허락했다. 수바드라가 바잔을 부르고 바바 앞에서 아르티를 올렸다.
그런 다음 바바는 코트루드에 있는 S. N. 완드레카르의 정원으로 갔다. 완드레카르는 봄베이 정부의 전 차관이었고, 그와 가족은 바바를 따뜻하게 맞이했다. 바바는 정원 안으로 들어갔고, 탁자 위에는 과일과 쿠키, 과자가 놓여 있었다. 바바가 자리에 앉자 모두가 그 앞에 앉았다. 바바는 완드레카르 가족 모두를 불러 자기 옆에 앉게 했고, 수바드라가 다시 바잔을 부르고 그를 위해 아르티를 올렸다. 마지막으로 바바는 모두에게 프라사드를 나누어 주었고, 밀란 포토 스튜디오의 비쿠바이 K. 파나르카르(신데를 통해 바바를 알게 된 사람)가 바바와 가족, 일꾼들의 사진을 찍었다. 정오 무렵 행사가 끝났고, 바바는 만달리와 함께 가네쉬킨드로 돌아갔다.
라마크리슈난은 이 방문들 내내 바바와 함께 차를 탔었다. 당시 푸나에는 독감이 유행하고 있었고, 차 안에서 바바는 라마크리슈난에게 예방 차원에서 한 달 동안 매일 APC(아스피린 같은) 두 알을 먹으라고 지시했다. 라마크리슈난은 아프지 않았고, 그렇게 오랫동안 그런 약을 먹는 것이 내키지 않았지만 지시대로 복용하기 시작했다.
5월 회의에서 노시르 이라니와 다른 이들이 기부한 1,000루피로, 바바는 1957년 6월 9일 일요일 가네쉬킨드에서 빈민 프로그램을 열었다. 바바가 지정한 대로 열다섯 살 미만의 가난한 소년 200명을 푸나의 러버들이 데려왔고, 그 러버들도 프로그램에 참석하도록 허락되었다. 봄베이, 나브사리, 하미르푸르, 안드라에서 온 몇몇 러버들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아이린 코니비어와 프란시스 골드니도 그중에 있었다.1 아이들이 차례로 바바에게 다가오면, 바바는 그들에게 절해 경의를 표한 뒤 천 조각 하나와 과자 하나를 건네주었다.
각주
- 1.코니비어와 골드니는 5월에 바바에게서 마하발레슈와르로 가라는 지시를 받고, 여름 동안 그곳의 레이스 뷰 호텔에 머물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