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8일 사타라로 가는 길에 바바는 몸이 좋지 않은 알리 샤를 보기 위해 메헤라바드에 들렀다.
바바는 사타라로 돌아온 뒤 10월 10일과 12일, 이렇게 이틀에 걸쳐 다시 단식했는데, 두 날 모두 24시간 동안 물조차 마시지 않았다. 그는 12일에도 머스트 접촉을 위해 콜하푸르로 차를 몰고 갔다.
아디 시니어는 니르반(nirvan)과 니르비칼프(nirvikalp)의 신성한 상태에 대해 좀 더 분명한 설명을 구하는 편지를 바바에게 보냈고, 13일에 바바는 바우를 통해 두 상태를 설명하는 답장을 구술했다.1
1956년 10월 14일 일요일은 다세라 축일이었고, 메헤라는 셰바를 화려하게 꾸며 바바 앞에서 그 말을 행진시켰다. 바바는 셰바와 마니의 애완 코커 스패니얼 피터를 사랑했다. 그날 바바는 메헤라, 마니, 나자, 라노, 고허, 메헤루를 데리고 크리슈나강과 벤나강의 합류점을 보러 갔다.
15일에 바바는 다시 물도 마시지 않고 24시간 단식했다. 그럼에도 바바는 평소처럼 카이코바드와 함께 은둔 작업을 했고, 카이코바드가 기도하는 동안 그에게 절했다.
10월 21일 일요일, 바바는 에루치, 펜두, 닐루와 함께 차를 타고 머스트 순회에 나섰다. 바이둘은 미리 보내져 있었고, 그날 나식에서 일행과 합류했다. 바바는 원래 마디아프라데시의 구나와 라자스탄의 코타에서 머스트들과 접촉할 계획이었다. 코타는 정북쪽으로 650마일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첫날 일정을 치른 뒤 계획을 바꾸어 인도르까지만 갔다. 밤낮으로 여행한 뒤, 그는 23일 자정에 메헤라바드에 도착해 알리 샤와 두 시간 동안 일했다.
그때 알리 샤는 최근의 병에서 회복해 매우 건강하고 원기왕성했지만, 바바는 그 머스트를 언급하면서 그가 죽을 경우를 대비한 매장 문제에 대해 파드리와 시두에게 지시했다. 그는 또 쿠슈루 쿼터스에도 가서 같은 일에 대해 아디 시니어에게 말했다. 그 머스트의 장례는 무슬림 의식에 따라 치러져야 했고, 비용은 모두 바바가 부담할 예정이었다.
"이것이 밥지와의 마지막 접촉이다."라고 바바가 말했다.
실제로 그것은 이 위대한 머스트와 바바의 마지막 만남이 되었는데, 알리 샤가 두 달 뒤 뜻밖에 육신을 버렸기 때문이다.
바바는 그 뒤 더 많은 접촉을 위해 봄베이로 향했다. 그 무렵 봄베이는 몹시 더웠다. 마침 크리켓 테스트 경기가 열리고 있었고, 바바는 26일 하루 종일 경기장에 머물렀다.
그러나 바람 한 점 없는 더위가 너무 혹독해서, 아시아나로 돌아온 그는 반쯤 농담으로 이렇게 말했다. "고된 머스트 여행 뒤에 좀 쉬고 싶었는데, 오히려 오늘은 나에게 타파스[고행]의 날이 되었고, 내가 크리슈나와 람이었을 때 하곤 하던 고행들이 떠올랐다!"
각주
- 1.니르반과 니르비칼프에 대한 이 담화를 보라. 4389페이지도 참조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