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는 그날 오후 3시 45분, 시드니의 마스코트 공항을 통해 호주에 도착했다. 호주의 세관 및 안전 규정 때문에 승객과 승무원 외에는 계류장에 나올 수 없었으므로, 바바와 만달리가 비행기에서 내릴 때 그들을 맞이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바바는 놀라는 시늉을 하며 에루치에게 "그들은 어디 있습니까?" 하고 몸짓으로 물었다.
그러고는 꽤 먼 거리였는데도 바바는 인근 터미널 건물 창문으로 내다보고 있는 호주의 바바 연인들을 알아보았다. 바바는 활주로를 우아하게 가로질러 걸어가며 그들에게 열정적으로 손을 흔들고 미소 지었다.
터미널 안에 들어서자 프랜시스, 빌 르 페이지, 브루포드 가족과 몇몇 다른 이들이 바바를 맞이했다. 그들 가운데는 구경하러 온 일반인도 많이 섞여 있었지만, 바바는 "자기" 일행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따로 인사했다. 한 사람은 "바바는 자기 일행이 누구인지 그냥 알고 계셨다!"는 점에 몹시 감명받았다고 말했다. 큰 인파 속에서 사람들이 길을 잃고 서로 흩어지고 있었고, 로버트 라우스는 바바를 얼핏이라도 보려고 안간힘을 썼던 일을 회상했다. 갑자기 그는 자기 뺨에 부드러운 손길을 느꼈다. 그것은 바바였다. 바바는 그를 한 번도 본 적도 만난 적도 없었는데도, 어떻게든 북적이는 군중 사이로 다가와 그를 만졌던 것이다.
공항에서 바바는 빌이 몰던 폰 프랑켄베르크 남작의 검은 트라이엄프로 메헤르 하우스로 갔다.1 시드니 그룹의 나머지 사람들과 멜버른에서 온 몇 명, 그리고 캔버라, 뉴캐슬, 아미데일에서 각각 한 명씩이 그곳에서 바바를 맞이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바바는 그들 모두를 한 사람도 빠짐없이 안아 준 다음, 씻고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집 안으로 물러갔다. 바바가 무엇을 드시고 싶어 하실지 몰랐고, 또 로나 라우스의 인도식 카레를 맛본 적이 있었기에, 프랜시스는 바바가 비컨 힐에 도착할 때 맞춰 카레를 준비해 두라고 로나에게 부탁했다. 바바는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저녁을 달라고 했고, 로나는 카레와 밥, 그리고 지난여름 시럽에 절여 두었던 망고를 내왔다. 바바는 로나의 카레를 매우 흡족해하며 자기 만달리 몫으로 더 달라고 했다. (바바는 또 그녀에게 그 조리법을 여성 만달리에게 보내 달라고 했다.)2
바바의 방은 30피트 x 20피트였다. 그 방에는 프랜시스가 손으로 다듬은 사암 벽이 사방에 있었고, 숲 지대로 열려 있는 큰 창을 통해 시드니와 그 주변 항만을 내다볼 수 있었다. 프랜시스는 동쪽 벽 대부분을 가리는 메이소나이트 임시 패널을 세우고, 프랜시스의 집에서 바로 언덕 너머에 살던 프랜시스 리에게 바바를 우주의 창조자로 묘사한 벽화를 그리게 했다. 바바는 그 벽화를 마음에 들어 했지만, 프랜시스 리에게 사슴 형상을 유인원으로 바꾸라고 말했다. 그 4분의 3에이커짜리 부지는 1949년에 폰 프랑켄베르크 남작과 다른 수피들이 낸 돈으로 바바를 위해 매입되었다.
각주
- 1.이나야트 칸의 제자인 폰 프랑켄베르크 남작은 호주 최초의 수피 단체를 이끌던 사람이었다. 그의 단체는 1927년부터 1950년까지 멜버른과 캠든(시드니 서쪽의 마을)에서 번성했다. 초기 호주 바바 연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처음에는 이 단체의 회원이었다. 프랜시스에게 메헤르 바바를 만나 보라고 권한 것도 폰 프랑켄베르크 남작이었지만, 정작 그는 바바를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채 1950년에 세상을 떠났다. 바바를 태운 그 자동차는 프랜시스에게 유증된 것이었다.
- 2.당시 호주에서는 인도 음식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고, 그것을 조리할 줄 아는 호주인도 거의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