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룩이 당시 결혼 적령기였던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 부모님은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 그들은 딸의 완강한 결혼 거부에 크게 놀랐다. 파탄 공주가 독신으로 남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특히 굴룩처럼 사랑스러운 공주라면 더더욱 그랬다. 그러자 부모는 그녀가 이미 자신의 사랑하는 님(Beloved, 비러벳)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모른 채 강제로 결혼하게 하려 했다. 처녀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아 온 분과 사랑에 빠져 있었다. 어떤 왕자나 잘생긴 신랑도 그분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었다. 굴룩의 가슴은 신성한 황홀경에 취해 있었고, 사랑하는 님과 하나 되기를 갈망하며 울었다.
몇 달이 지나면서, 굴룩의 부모님은 더욱 강하게 밀어붙였고, 특정한 날짜에 특정한 왕자와 그녀의 결혼식을 치를 계획까지 세웠다. 굴룩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모든 준비가 끝나 있었다. 그녀는 부모를 사랑했지만, 그들의 계획은 그녀에게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의 진정한 사랑하는 님을 찾으려는 열망이 모든 장애물과 고난을 극복했고, 그녀는 집과 발루치스탄을 탈출했다 — 다시는 부모님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굴룩은 동북쪽으로 여행하여, 먼저 페샤와르로, 그 다음 라왈핀디로 갔다. 당시 젊은 처녀가 집을 떠나 인도의 산악 지역을 혼자 여행하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하나님이 그녀를 지켜보고 계셨기에, 험한 산길에서 그녀는 발각되거나 붙잡히지 않았다.
여행하는 동안, 굴룩은 전통적인 무슬림 베일을 썼다. 그러나 사랑하는 님이 그 사랑하는 이를 얼마나 오래 베일에 가려 두겠는가? 그 사랑하는 님은 이원성의 베일을 벗기고, 이 합당한 신부를 만유로 존재하는 자로 변화시킬 준비를 하고 계셨다.
굴룩의 가슴은 신성한 사랑의 불로 타오르고 있었고,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다는 끔찍한 고통을 겪고 있었다. 그녀의 안절부절못하는 상태는 배고픔과 갈증, 수면마저 잊게 만들었다. 밤낮으로 그녀는 사랑하는 님에 대한 신성한 광기에 사로잡혀 라왈핀디의 거리를 배회했다. 한때 공주였던 그녀는 이제 방랑자가 되었고, 이 끊임없는 불안만이 그녀의 유일한 휴식이었다. 얼마나 많은 생에 걸친 혹독한 고행과 수행이 그녀 안에 이런 영적 갈망을 만들어냈는지 누가 알겠는가?1 그녀의 유일한 소원은 사랑하는 님의 얼굴을 응시하는 것이었고, 그녀의 가슴은 외쳤다. "오라, 나의 사랑하는 님이여, 나를 만나러 오라! 빨리 오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으리라!"
이런 식으로 여러 해가 흘렀지만, 굴룩의 갈망하는 눈물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눈물이 육체의 그릇을 "비운" 후에야 비로소 힌두 사드구루를 만났다.2 그분의 완전한 인도 아래, 굴룩은 지금의 파키스탄 지역의 광야에서 산을 올라 한적한 동굴에서 살았다.
각주
- 1.메헤르 바바는 언젠가 바바잔이 전생에서 바스라의 라비아(Rabia of Basra)라 불리는 추앙받는 성인이었다고 밝혔다.
- 2.그 사드구루의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