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는 항의했다. "저는 어디에도 가고 싶지 않습니다. 게다가 제가 거기에 간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제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바바는 그를 꾸짖었다. "나우랑가로 가든지, 아니면 네 짐을 모두 챙겨 집으로 돌아가라!"
그것은 어려운 선택이 아니었고, 바우는 나우랑가에 가기로 했다.
바바는 그에게 "거기 있는 모두에게 나의 사랑을 전하라"고 당부했고, 이어 "내가 너와 함께 가겠다"고 약속했다.
바우는 사타라에서 기차를 타고 1월 21일 칸푸르에 도착했다. 약속대로, 바바가 정말 그와 함께 하미르푸르까지 동행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 지역 여러 곳에 프로그램이 마련되었고, 바우는 이 2주 동안 내내 바바가 자기와 함께 계심을 느꼈다. 특히 한 가지 일이 그를 확신하게 했다. 바우는 바바에게 어떤 메시지를 달라고 청했지만, 바바는 대신 마을 사람들에게 이 다섯 단어의 구호를 부르라고 지시했다. "삿칫아난다, 파라마난다, 메헤르 바바 비드냐난드."
바우는 의아했다. "거기 사람들은 이것으로 만족할까?" 그러나 그가 하미르푸르에 도착해 그 구절을 케샤브 니감에게 전하자, 케샤브는 그것을 음악가들에게 전했고 그들은 5분 만에 곡을 만들었다. 그 뒤로는 작은 촌락이든 마을이든 어디서나 이 구절이 거듭 노래되고 외워졌고, 마침내는 마치 그것 자체의 생명을 지닌 듯했다! 그 선율은 시원한 산들바람처럼 공기 중에 흘러 퍼졌다.
바우가 나우랑가로 들어가는 다리 위에서 행렬을 이끌고 있을 때, 그는 갑자기 선두에 있는 이가 자신이 아니라 메헤르 바바임을 체험했다. 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고, 바우의 몸을 한 채 걷고 있는 이는 바바였다! 바우는 나우랑가에서 기초석 놓는 의식을 거행한 뒤, 2월 7일 사타라로 돌아왔다. 몇 해 뒤 그 자리에 메헤르 사원이 세워졌고, 낙성식을 위해 아디 시니어가 파견되었다. 그때 바바는 그곳을 메헤르 담(Meher Dham), 곧 메헤르의 집 또는 거처라는 뜻의 이름으로 불렀다.
한편 1955년 1월 20일, 바바는 에루치, 펜두, 바이둘과 함께 복스홀을 타고 쿨다바드로 갔다. 차간은 아흐메드나가르에서 불려와 그곳에서 그들을 만났다. 바바는 하즈랏 자르자리 자르 박쉬의 다르가와 다른 무덤들에서 날마다 은둔 속에 일했고, 만달리는 사방을 엄중히 지켜 새가 지저귀는 소리조차 바바에게 들리지 않게 했다.
쿨다바드에 닷새 머문 뒤 바바는 메헤라자드로 가서 카카와 크리슈나지를 만났다. 카카는 바바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크리슈나지에 대해 불평이 많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