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참된 '나-임'의 무한한 본래 상태를 경험합니다. 이 에고를 참된 에고라고 하는데, 거짓 에고 안에서 말콤이 "나는 이 몸이다, 혹은 나는 이 에너지다, 나는 이 마음이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이제 말콤은 "나는 하나님이다"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자연 에고와 거짓 에고와 참된 에고가 있습니다. 오직 가슴이 순수한 자만이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퍼덤이 물었던 것, 곧 가슴이 순수하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내가 설명한 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당신들을 어디에도 데려가지 못할 것입니다. 마음이 붙잡을 수 없는 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지상에는 결코 내려오지 않는다고 하는 극락조가 있습니다. 하피즈가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극락조와 같습니다.
생각의 그물을 펼쳐 그분을 붙잡으려 하지 마십시오.
그 그물에서는 마음밖에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당신의 것이 될 것입니다.
생각[지성]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아무리 설명해도 하나님은 설명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원하기만 하면, 당신은 순식간에 하나님을 보고 알게 될 것입니다.
라마크리슈나[캘커타의 사드구루]는 벵골어밖에는 어떤 언어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글을 읽을 줄 몰랐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문맹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순식간에 모든 앎을 얻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주 글을 잘 알고 학문이 깊은 사람들이 떼지어 그 주위에 모였지만, 그가 하는 말을 한마디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사랑하십시오!
비밀을 몇 마디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당신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이성적인 마음을 더 많이 쓸수록, 이해는 더 적어집니다. 설명하고 이해하려면 당신이 거기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있으면 하나님은 없습니다. 그러니 설명과 이해란 하나님을 끌어들이는 대신 그분을 몰아내는 것을 뜻합니다. 당신이 이해했다고 여기는 바로 그때, 당신은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내 하나이며 동일한 사랑하는 님은, 서로 다른 모습과 옷차림, 서로 다른 이름으로 나타나 늘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그분은 하나이며 동일한 사랑하는 님입니다.
당신은 이미 그러한 존재이니, 그것이 되어야 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이지만,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낮추었고, 이것을 가르치기 위해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사랑을 통해 당신이 이미 그러한 존재가 되십시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바바는 (라마의 강림기 때의) 자낙 황제와 그의 제자 칼리안에 대한 다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시타의 아버지인 자낙 황제는 완전한 스승으로도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의 통치 기간에, 제국 밖에서 하나님을 보기를 절실히 갈망하는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나는 반드시 그분을 보아야 합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이 외부의 사물들을 보는 것만큼 분명하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