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는 메헤르 바바와 함께 있던 동행들이 누구인지 전혀 몰라서, 사람마다 붙잡고 "당신은 바바와 함께 오셨습니까?" 하고 묻기 시작했다.
마침내 바우는 몇몇 만달리를 만났지만, 바바와 면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었다. 사바크 코트왈은 그에게 아흐메드나가르의 아디 사무실로 편지를 쓰라고 제안했다. 안드라의 랑가 라오는 아들과 엘루루의 카나카단디 수리야나라야나 박사와 함께 사오네르에 와 있었다. 바우는 그들을 만났고, 그들 역시 처음 온 사람들이었지만 랑가 라오는 바바와의 면담을 마련해 주겠다고 바우에게 장담했다. 가데카르는 바우에게 진 아드리엘의 《아바타》를 읽으라고 권하면서, 지금은 면담이 불가능하다고 거듭 말했다.
다르샨은 저녁까지 이어졌고, 끝난 뒤 바바는 방문객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 서킷 하우스로 갔다. 밤이 될 때까지 바우는 불안한 마음으로 그 방갈로 주위를 맴돌았다. 리쉬케쉬로 가려던 생각은 모두 희미해지고 있었고, 그는 자신이 찾아 헤매던 분을 마침내 찾았다고 마음속으로 느꼈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그는 누나의 집으로 갔다. 누나는 그를 걱정하며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바우는 자신이 왜 그렇게 안절부절못하는지 털어놓지 않았다.
그날 밤 바우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벽 4시에 집을 나서려 하자 누나가 그렇게 일찍 어디 가느냐고 물었다. "산책하러요." 하고 그가 말했다. 누나는 함께 가겠다고 했고, 그 바람에 그는 바바의 방갈로로 갈 수 없었다. 돌아왔을 때 바우의 매형 람랄 싱 가하르와르가 그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풀이 죽어 보이냐? 아주 넋이 나간 사람 같구나."
"전 괜찮아요." 바우가 중얼거렸다. "아무 일도 없어요. 그냥 잠깐 나갔다 올게요."
바우는 몰랐지만, 람랄의 아버지 마하라지 싱은 바바의 방문을 준비하기 위해 1952년 11월 메헤라바드 모임에 참석했었다. 람랄과 니라데비(바우의 누나)도 1944년 사오네르에서 바바의 다르샨을 받았지만, 그 사실을 바우에게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다. 바우는 신문에서 처음으로 바바의 이름을 보았지만, 신성한 님과의 첫 만남은 그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바우는 다시 서킷 하우스로 향했다. 랑가 라오와 그의 아들, 그리고 카나카단디 박사는 안드라로 돌아갈 길이었는데, 랑가 라오의 아들은 떠나기 전에 바바에게서 화환 하나를 꼭 받고 싶어 했다. 이것이 바바의 다르샨을 받을 좋은 구실이 되겠다고 생각한 바우는, 바바께 화환을 청하는 쪽지를 써 달라고 랑가 라오에게 부탁하며 자기가 그 쪽지를 서킷 하우스까지 가져가겠다고 했다. 랑가 라오가 쪽지를 써 주자, 바우는 그것을 들고 바바의 방갈로로 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