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신비한 남자는 아마 미국에서 스승을 위해 내면계에서 일하던 스승의 영적 대리인 가운데 한 명이었을 것이다.
바바와 여성 만달리는 1952년 7월 30일 수요일 오후 3시, 팬암 50편으로 뉴욕을 떠났다. 차르미안은 그들과 동행하도록 허락받았다. 남자 다섯이 의자째 바바를 들어 올려 비행기 계단 위로 옮겼다. 바바는 다윈의 셔츠 깃을 움켜쥐었고, 그것이 바바가 몸을 지탱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그 다섯 사람은 팔걸이를 떼어 낸 세 좌석 위에 바바를 눕혔다.1 새로 왕관을 쓴 열여덟 살의 미스 유니버스 아르미 쿠셀라(핀란드 출신)와 스물다섯 살의 대영제국 헤비급 챔피언 조니 윌리엄스가 같은 비행기에 타고 있었기 때문에 곳곳에 신문 기자들이 있었다.
미스 유니버스 선발대회가 열린 첫해였고, 에이지는 그 아이러니에 미소 지었다. 미스 유니버스는 대중의 환영을 받고 있는데, 우주의 창조주는 외면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일은 에이지에게 1931년 런던에서 군중이 마하트마 간디를 보기 위해 길가에 늘어서 있었던 반면, 아바타는 바로 그 거리들을 조용히 지나가고 있었던 일을 떠올리게 했다.
바바와 여성들은 다음 날 아침 10시에 런던에 도착했다. 윌과 메리 배켓, 델리아와 돈(돈킨)이 그들을 맞아 버킹엄 팰리스 로드의 루벤스 호텔로 데려갔고, 그들은 그곳에서 일주일 머물 예정이었다. 델리아와 퍼덤, 그리고 배켓 부부가 그들의 숙소를 마련해 두었다. 남성 만달리는 31일 오후 4시에 뉴욕을 떠났지만, 뉴펀들랜드에서 비행기에 엔진 고장이 생겨 밤새 공항에 붙들려 있었다. 크게 지연된 끝에 만달리는 8월 2일 오전 2시에 런던에 도착했다. 윌은 공항에서 그들을 놓쳤고, 그래서 그들은 바바가 어디에 묵는지 몰라 오전 내내 그를 찾아다녀야 했다.
돈은 바바의 다리에 관해 저명한 정형외과 의사 레지널드 왓슨-존스 박사와 상의했다. 2일에 바바는 고허와 돈과 함께 그를 만나러 갔다. 그날 바바의 깁스가 풀렸고, 다리는 탄력 붕대로 감겼다. 불과 며칠 전 뉴욕의 의사들은 그가 두 달 동안 깁스를 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왓슨-존스 박사는 돈에게 바바가 일주일 뒤부터 체중 부하 운동을 시작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바바의 지시에 따라 영국에 와 있던 아르나바즈의 오빠 호마 다다찬지가 의사의 진료실에서 그들과 함께 있었다.
바바가 호마에게 물었다. "내 다리가 얼마나 아픈지 짐작이 갑니까?"
"네, 압니다." 호마가 대답했다.
놀란 바바가 물었다. "어떻게 그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까?"
"제 다리도 아픕니다." 그가 답했다.
바바가 그에게 런던에 오라고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각주
- 1.남성 만달리는 뒤늦은 비행편으로 런던에 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