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이 그의 침묵에 대해 묻자, 바바는 알파벳 보드에 철자를 짚어 이렇게 말했다. "내가 침묵을 깨고 말씀을 발할 때가 가까워졌습니다."
파스칼은 이 기간 동안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는 바바를 다시 보게 되어 무척 기뻐했고, 나중에 아내에게 "바바와 함께 있기만 해도 내 활력이 되살아났다"고 말했다.
봄베이에 머무는 동안 바바는 마하발레슈와르에서 모임을 열 계획을 논의했다. 그 모든 세부 사항은 동행자인 아디 시니어, 에루치, 바이둘, 펜두와 준비담당자들인 메헤르지, 나리만과 함께 면밀히 조율되었다. 그에 따라 1950년 9월 11일 회람문이 인쇄되어 옛 생활과 새로운 삶의 헌신자들 모두에게 발송되었다. 회람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최근의 지진과 홍수, 아삼의 비극, 끊이지 않는 벵골과 비하르의 기근, 인도 전역의 압도적인 난민 문제, 그리고 세계 곳곳의 여러 광범위한 재난은 현재 자연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과 이루 말할 수 없는 비참함, 극도의 실망, 그리고 뜻밖의 무력감과 좌절감을 전 세계에 불러일으키게 되었습니다.
바바는 이 모든 것이, 1949년 10월 16일 아흐메드나가르를 떠나 무력감과 절망의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나설 때 자신이 그려 두었던 새로운 삶의 그림 작업을 어느 정도 가리켜 주는 표지가 되었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바바는 1949년 10월 16일에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1950년 10월 16일까지 새로운 삶을 살아 보려고 했지만, 새로운 삶은 그가 원했던 방식대로 살 수 없었습니다.
새로운 삶 12개월의 경험을 통해, 바바는 이제 앞으로는 개인적인 요구를 맞춰 주거나, 자신의 명령과 새로운 삶의 조건을 따르는 데서 드러나는 개인적인 약점과 느슨함을 용인하지 않기로 분명히 결정했습니다. 바바는 또한 새로운 삶의 조건들을 올바른 정신으로 이행하지 못한 자신의 약점도 인정합니다. 유혹과 분노 등에 굴복하는 자신의 개인적인 약점, 그리고 동행자들에 대한 감정에 자신을 내맡기는 전반적인 약점 때문에, 메헤라바드에서 했던 원래의 서약이 훼손되고 그 원래의 서약과 크게 어긋나는 계획 1, 2, 3이 전개되는 결과가 빚어졌습니다. 또한 가니 박사와 사다시브 파틸의 경우처럼 옛 생활의 보자[재정적 부담]가 그 사이에 생겨나, 그에 따라 조정하고 해결해야 했습니다. "하나님 뜻이라면 이런 종류의 일은 1950년 10월 16일부터는 되풀이되지 않을 것입니다." 바바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러한 경험 때문에, 바바는 1950년 10월 16일 현재의 평생 시종 동행자들마저 자유롭게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바바와 함께 새로운 삶을 계속할지, 아니면 다시 바바의 옛 생활의 제자가 될지를 스스로 다시 결정할 또 한 번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