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샤브는 바바를 바라보았다. 아무도 왜 바바가 그렇게 갑자기 테라스로 나갔는지 알지 못했다. 그들은 아마 바바가 갠지스 강으로 몰려드는 인파의 바다를 가리켜 보이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바로 그 순간 케샤브 니감이 갠지스 강물에 몸을 씻고 있을 뿐 아니라 바바의 다르샨이 주는 기쁨을 한껏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얼마 뒤 바바는 남자들에게 나가서 행렬을 보고 난 다음 만지리 마피로 돌아오라고 했다. 그는 인파의 바다 속에서 아무도 길을 잃지 않도록 서로 가까이 있으라고 지시했다. 바바는 다음 날 여자들과 함께 만지리 마피로 돌아올 예정이었다.
그날 하르드와르에는 약 150만 명의 순례자가 모인 것으로 추정되었다. 열기와 먼지구름 속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곤 우글거리는 인파뿐이었고, 그 가운데 주요 사두들과 마하트마들은 코끼리를 타고 있었다. 몸에 칠을 한 벌거벗은 사두들의 행렬이 시작되었지만, 광란에 가까운 군중이 거세게 몰려들었기 때문에 동료들은 곧 발길을 기차역으로 돌렸다. 그곳에서 그들은 바바가 여자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바바는 자신과 여자들도 방갈로에서는 그 행렬을 제대로 볼 수 없어서 돌아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산사르찬드와 그의 형제는 그들에게 그 행렬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바바는 그 일로 크게 언짢아했다. 그러나 역으로 떠나기 전, 바바는 산사르찬드와 그의 형제의 발에 겸손히 손을 대며 자신이 언짢아했던 것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기차는 몹시 붐볐지만, 그들은 데라둔에 이르렀고 자정에 만지리 마피에 도착했다.
한편 그다음 날 다시 하르드와르에서, 파르메슈와리 다얄 니감(푸카르)과 그의 외삼촌 바바니 프라사드 니감, 라이사헵 라마샨카르는 이상한 일을 겪었다. 그들 역시 하미르푸르에서 쿰바 멜라에 와 있었다. 그들은 바바가 어디에 머무는지 알아내자 그 방갈로로 갔다. 멀리서 그들은 바바가 집 위층을 걷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 보니 아무도 없었다! 그들이 물어보자, 바바가 이미 전날 떠났다는 말을 들었다.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조금 전 자신들이 바바를 보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집 안팎을 둘러보도록 안내받았고, 마침내 어리둥절한 채 바바가 그곳에 없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31세의 파르메슈와리 니감은 바바를 비판해 왔고 아직 그를 믿지 않던 인도의 공산주의 지도자였다. 그는 바바를 사기꾼으로 폭로할 생각이었지만, 그의 눈앞에 펼쳐진 그 신비로운 광경이 그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한 공산주의자이자 공언한 무신론자였던 쿠마르는 이미 자기 삶을 바바에게 바쳤다. 이제 이 두 번째 공산주의자도 바바의 훗날 활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운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