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제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 첫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저녁 바바는 비슈누를 통해 가야 프라사드에게, 다음 날부터는 음식을 나트 박사 집에서 만들어 보내라고 전했다. 두 의사의 아내가 모두 그 기회를 바라고 있었기에, 가야는 몹시 기뻤다.
가야 프라사드의 봉사는 진실했다. 꾸중과 조롱을 받으면서도 가야는 완전한 겸손과 사랑으로 메헤르 바바를 섬겼다. 바바는 그에게 다르샨도 주지 않았고, 동반자들과 함께 앉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으며, 게다가 가야는 자기 잘못도 없는데 이유 없이 꾸지람까지 듣고 있었다! 의사들과 그 가족들은 방갈로 근처에 발도 들여놓을 수 없었다. 그러나 바바의 그런 태도는 전적으로 두 가족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 것이었다. 바바는 엄격한 태도를 통해 그들에게 사랑을 쏟고 있었고, 그들은 그런 체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이 행운이었다.
1949년 11월 17일 목요일 아침, 바바는 동반자들과 함께하자마자 그들을 보내 발을 씻게 했다. 그들이 돌아오자 그는 아무 설명도 없이 손으로 그들의 발을 만졌다. 새로운 삶에서는 만달리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금지되어 있었다. 바바를 포함한 구성원들은 "동반자"라고 불렸다. 이 말은 그 당시 바바의 작업 수준이 물질 경지의 의식 차원에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작업을 위해 물질 세계에 초점을 두고 있었으므로, 바바는 헌신자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 역할을 하는 동안 그는 동반자들에게 헌신자가 지닌 온갖 약점을 드러내 보였다. 동시에 그는 자신의 행동을 통해 약점에서 벗어나는 길을 보여 주고 있었다.
"체현된 완전함은 완전함의 모든 측면에서 완전하다."라고 에이지는 설명한다. "완전함이 완전한 인간에게 청소부의 일을 하게 할 때, 그는 그 일을 하면서도 완전함을 드러낸다. 마찬가지로 왕 노릇을 할 때에도 그 완전함은 완전하다. 이처럼 빈민과 신앙인, 악당의 역할을 하고 또 다른 측면들에서도, 완전한 이는 완전함을 드러낸다. 죄인의 역할을 하는 데에도 파키르 역할을 하는 것만큼 완전함이 있다.
"새로운 삶의 이 단계에서 바바는 스승에서 헌신자로 완전히 돌아섰고, 그의 신성한 의식은 그 역할을 온전히 드러냈다. 메헤르 바바는 매 단계마다 동반자들의 불완전함을 꺾으면서, '불완전한' 완전함을 매개로 그들을 완전함으로 이끌고 있었다!"
그들의 발을 만진 뒤 바바가 말했다. "당나귀를 위해 따로 정해 둔 금액이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 방갈로를 무료로 마련해 준 나트 박사의 성의 덕분에 당나귀를 위한 금액을 어느 정도 보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