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당신께 100퍼센트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하고 마우니가 석판에 분필로 썼다.
만족한 바바는 받아쓰게 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십시오. 매일 포도주 두 병을 마시고, 고기를 먹고, 영화를 보러 가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까?"
마우니 부아는 주님께 왔지만, 여전히 자기 생각과 공상에 비중을 두고 있었다. 영성에 대한 그의 관념이 하나님보다 더 컸던 것이다! 바바의 명령은 그를 내적으로 뒤흔들었다.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의 반응을 보고 바바는 미소를 지으며 받아쓰게 했다. "좋습니다. 순례를 다니며 계속 구걸해 먹으십시오."
그리고 바바는 마우니 부아의 금욕적 성향에 맞는 추가 지시를 그 사두에게 내렸다.
바바의 말은 마우니의 공포를 가라앉혔다. 그 사두는 자신이 살아오던 방식대로 살면 영적 보화를 얻게 되리라고 확신했다. 바바의 말은 겉보기에는 그의 결심을 다시 굳혀 주는 듯했다. 그래서 마우니는 굳어진 생각을 품은 채 떠났지만, 바바는 결국 그 생각들을 산산이 깨뜨렸다. 마우니 부아는 메헤르 바바의 말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신성시하던 엄격한 성향을 실천하는 데 몰두해 있었기 때문이다. 바바는 그를 그렇게 쉽게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바바는 마우니의 뿌리 깊은 종교적 성향의 핵심을 계속 두드렸고, 몇 해 뒤 마우니는 마침내 그것들을 극복했다.
에이지가 지적했듯이, "사람의 집착과 생각, 성향은 고기를 먹거나 포도주를 마시거나 영화를 본다고 해서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스승의 지시를 충실히 따를 때에만 극복됩니다. 그 사두가 바바의 첫 명령을 기꺼이 받아들였더라면, 바바는 기뻐하며 스스로 그 명령을 바꾸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그 사두에게 주어진 시험이었습니다. 그러나 깊이 박힌 관념은 한순간에 극복될 수 없습니다."
1949년 8월 13일, 가야 프라사드 카레는 우타르프라데시 라트의 집에서 깊은 생각에 잠겨 앉아 있었다. "메헤르 바바의 다르샨을 한 번도 받지 못했다니, 나는 얼마나 불운한가," 하고 그가 한탄했다. "바바다스에게서 그분 이야기를 듣자마자 다르샨이 중단되어 버렸다. 도대체 바바다스는 왜 처음부터 나에게 그분 이야기를 해준 것인가? 그가 내게 그분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더라면, 내가 이렇게 안절부절못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대신 퐁디체리에 가서 오로빈도의 다르샨을 구해야 할지 고민했지만, 뒤이어 오로빈도 역시 다르샨을 중단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