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는 기독교 관련해서 나리만이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따르던 주니퍼 수사에 관한 글을 읽었고, 다른 기독교 신비주의 서적들에서도 몇 대목을 읽었다.1
그날 저녁 늦게 바바로부터 이런 메시지가 전해졌다:
나의 은둔 기간 동안 카카는 아침부터 밤까지 온 정성을 다해 열심히 일하며, 나를 위한 셀 수 없는 의무를 하나하나 챙겼고, 만달리의 집안일도 관리했으며, 고허를 통해 여성 만달리의 장보는 일까지 돌보았습니다. 무한한 안절부절이 늘 나의 동반자이기는 하지만, 현재의 은둔에서 7월 1일부터 9일까지처럼 그토록 안절부절못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카카도 7월 1일부터 침묵 중이었다. 그는 마라티어로 글을 쓸 줄 몰랐고, 하인들은 구자라트어를 읽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카카는 그들에게 지시를 내려야 했고, 카카와 하인 소년들이 석판 앞에 머리를 맞대고 그가 무슨 뜻을 전하려는지 풀어 보려 애쓰는 모습은 아주 힘들면서도 종종 우스운 광경이었다.
오후 8시에 카카는 바바가 없는 동안 해야 할 일을 하인들에게 설명하려 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사실, 곧 바바가 정말로 떠난다는 말은 빠뜨리고 말았다!
모두를 다시 불러 모아야 했지만, 바바는 나중에 이렇게 전갈을 보냈다: "그 소동은 카카의 실수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내 일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나는 카카에게 화가 났지만, 그런 사소한 일에 그렇게까지 흥분하는 것은 나의 약점입니다."
그날 밤 나리만이 보초를 섰고, 바바는 카카를 두 차례 불렀다.
카카가 오면 바바는 "누가 문을 두드렸습니까? ... 그 소리 들었습니까?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보십시오 ... 내가 잤는지, 잤다면 얼마나 잤는지 보초에게 물어보십시오." 같은 질문을 하곤 했다.
7월 12일 오전 11시부터 11시 30분까지 잘 케라왈라가 다시 바바에게 우파니샤드의 구절들을 읽어 주었고, 11시 30분부터 정오까지는 메헤르지가 다사티르를 읽어 주었다. 오후에는 나리만이 신비주의에 관한 몇 권의 책을 읽었다. 그날 밤에는 메헤르지가 보초를 섰다. 또다시 몇 차례 두드리는 소리가 났고, 카카는 자던 중 두 번이나 불려 나가 그 일을 살펴봐야 했다. 두 번 다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1949년 7월 13일 수요일에도 같은 일정이 이어졌는데, 이날이 읽기 단계의 마지막 날이었다. 메헤르지는 오전 10시 30분부터 11시 20분까지 다시 다사티르를 읽었고, 나리만은 11시 20분부터 12시 10분까지 읽었다. 오후 1시 50분에 잘 케라왈라는 바바 자신의 「창조의 신성한 주제」를 읽도록 요청받았다. 그들은 모두 함께 캐빈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 버스 바깥에서 읽곤 했다. 바바는 버스 안에 머물렀고, 실제로 그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날 밤에는 나리만이 보초를 섰다.
각주
- 1.돈은 메헤라바드에서 자신이 갖고 있던 기독교 영성 관련 서적들 가운데 몇몇 부분에 표시해 두라는 지시를 받았다. 아디 시니어가 그 책들을 모아 나리만에게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