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머스트 뭉가 사이는 가마에 실려 언덕 위로 옮겨졌고, 물만 마시며 금식을 계속하던 바바는 이틀 동안 그와 은둔하여 작업했다. 뭉가 사이는 마주브와 비슷해 자기 몸을 의식하지 못했고, 바바가 그 머스트에게 직접 먹여 주곤 했다.
이 언덕 꼭대기에는 소수의 구도자들이 살면서 하나님께 바친 단순하고 금욕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그들은 수도승들과 같았다.
바바는 그들을 칭찬하며 말했다. "나는 인도 전역은 물론 많은 외국의 사원과 성지, 아쉬람, 수녀원을 방문했지만, 오직 영적 열망과 사심 없는 일, 물질적 욕망을 꺾는 고행만으로 이루어진 이렇게 모범적으로 단순한 삶을 사는 구도자들은 본 적이 없습니다."
이 강인한 금욕가들의 엄격한 식사는 거칠게 간 밀을 물에 끓인 죽뿐이었다.
다음 날인 5일, 바바는 이 구도자 18명의 발을 씻고 그 발에 머리를 댄 다음, 각자에게 프라사드로 7루피씩 주었다.
이틀간 은둔하고 금식한 뒤, 바바는 11월 6일 산에서 내려왔다. 그는 주나가드의 다르가에 들어갔는데, 그곳에는 머스트 뭉가 사이가 다시 가마에 실려 와 있었다. 같은 날 바바는 또 다른 훌륭한 머스트, 굴람 나비 낭가와도 접촉했다.
11월 7일 일요일, 바바는 기르나르의 산들 가운데 하나의 정상으로 갔다. 거기서 바바는 옛 성왕 바르타리 왕의 이름을 딴 동굴에서 두 시간 동안 은둔하여 앉아 있었다. 기르나르의 오래된 산들에는 아쇼카 왕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동굴들 가운데 일부가 있다.
동굴에서 나오며 바바는 만달리에게 이렇게 밝혔다. "인도에서 태어난 모든 아바타는 일생에 적어도 한 번은 기르나르를 방문했습니다."1
주나가드에서의 일을 마친 바바는 델리로 향했고, 1948년 11월 10일 수요일 오전 7시 50분에 기차로 도착했다. 케키 데사이는 바바의 방문을 미리 통보받고 그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해두었다. 바바는 니콜슨 로드 4번지 하산 빌딩에 있는 그의 집에 머물렀다. 바바는 은둔 작업에 따르는 엄청난 긴장을 풀기 위해, 10일부터 14일까지 델리에서 열리는 서인도제도 대 인도의 첫 크리켓 테스트 경기를 보고 싶어 했다.
각주
- 1.메헤라도 어린 시절에 기르나르의 이 언덕을 한 번 방문한 적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