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반은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고, 바바는 그의 뜻이 진실하다는 점에 만족했다.
바바는 아디 시니어와 루스톰 카카의 노래를 들었다. 그는 언덕에서 저녁을 먹고 오후 8시 30분에 여성들과 함께 아흐메드나가르로 돌아왔다.
한편 가데카르는 푸나에서 바바의 일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있었고, 그의 영향으로 여러 사람이 삶을 바바에게 바치고 스승의 발아래에 귀의했다. 그들 가운데는 스물다섯 살의 락쉬미칸트 발완트라오 타데도 있었는데, 그의 온 가족도 결국 바바에게 귀의하게 된다. 타데는 가데카르의 감독 아래 대학에서 일하고 있었다. 바바가 우타르 카시에서 돌아온 뒤, 타데는 다르샨 허락을 구하는 편지를 썼고 바바는 5월 15일로 허락을 내렸다. 하지만 처음에는 타데가 직장에서 휴가를 받을 수 없었다. 그가 아흐메드나가르에 있어야 했던 날, 타데는 고열로 앓아누웠다. 며칠 뒤 그는 다르샨 날짜가 6월 1일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타데의 상사는 그가 아프다는 이유로 휴가를 주었고, 또 성인을 찾아가는 사람에게는 휴가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타데는 약속을 지키고 6월 1일 메헤라바드에서 바바를 만났다. 그는 단번에 매료되어 이렇게 생각했다. "부모님도 함께 오셨더라면 훨씬 좋았을 텐데."
이 생각이 그의 마음에 떠오르자마자, 바바는 미소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부모님도 오고 온 가족도 올 것입니다."
바바가 물었다.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저는 기숙사 사감입니다." 하고 타데가 대답했다.
"다른 사람들과 좋게 지내십시오. 모두를 똑같이 대하십시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나는 언제나 당신과 함께 있습니다."
타데의 기숙사에는 서로 다른 카스트 출신 학생 80명이 있었지만, 바바가 일러준 대로 그는 모두를 사랑으로 대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을 도왔다. 그는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바바의 훈계가 지닌 온전한 의미를 깨달았다.
앞서 말했듯이, 1948년 아흐메드나가르에 머무는 동안 바바는 가끔 메헤라바드를 방문했고, 또 아랑가온 근처의 가족 숙소에 가서 거기 사는 가까운 이들을 보기도 했다. 가족 숙소에는 사박 코트왈 가족, 차간 가족, 시두 가족, 장글레 가족의 네 가족이 머물고 있었다. 바바가 여행에서 돌아올 때마다 이 가족들은 뜰을 쓸고 청소하며 모든 것을 정돈해 두고 그를 기다리곤 했다. 이번에 바바가 히말라야 여행을 마치고 그들을 찾아왔을 때, 네르기즈 코트왈이 말했다. "바바, 저희는 이렇게 오랫동안 당신을 기다려 왔습니다. 당신이 오시기를 기다리며 날마다 집과 마당을 청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