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베이에서 머스트 작업을 마친 뒤, 바바와 남녀 만달리는 3월 20일 토요일 아흐메드나가르로 돌아왔다. 그날 밤부터 바바는 일과를 바꾸어 갸라의 집 대신 루시 팝의 집에서 잠자기 시작했다. 그는 낮 동안 제빙공장에서 만달리를 찾아갔다.
25세의 바기라트 티와리는 여러 해 바바와 함께 지냈고, 바바의 조언에 따라 나식에서 상업 운전 훈련을 받았다. 과정을 마친 뒤 그는 트럭을 사서 자신의 운송업을 시작했다. 혼사가 정해져 1948년 2월 바기라트는 코킬라라는 열네 살 소녀와 결혼했다. 바바는 그 젊은 부부가 쿠쉬루 쿼터스로 옮기기 전 몇 달 동안 제빙공장 방갈로의 일부를 쓰도록 허락했다. 만달리의 부엌에서 신혼부부에게 음식이 보내졌고, 바바는 직접 코킬라에게 집안을 단정히 꾸리는 법을 보여주었다.
한 번은 코킬라가 바깥 뜰에서 맨발로 냄비와 프라이팬을 닦고 있었는데, 바바가 이를 보고 말했다. "코킬라, 차팔을 신고 다니는 습관을 들이세요. 진흙탕에서 맨발로 일하면 발을 상하게 합니다."
바바는 그녀에게 좋은 주부가 되는 법을 보여 주고 있었고, 무엇이든 제자리에 있지 않으면 바바가 직접 집어 들어 원래 자리로 돌려놓곤 했다.
결혼할 때 겨우 십대였던 코킬라는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컸다. 그녀의 고향 인도르에서는 힌디어를 썼지만, 아흐메드나가르의 토착 언어는 마라티어였다. 바바는 그녀의 바람을 받아들여 사로쉬의 영향력을 통해 그녀가 학교에 입학하도록 손썼다. 바바는 바기라트에게 매일 아침 통가로 그녀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오후마다 다시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다른 여학생들은 호기심이 많아 코킬라에게 매일 누가 데려다주고 데려오는지 물었다. 그들은 그녀를 몹시 놀리고 비웃었고, 결국 그런 놀림과 코킬라의 언어 문제 때문에 더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은 완전히 사라졌다.
바바는 때때로 여자들을 사로쉬 시네마로 영화를 보러 데려갔다. 사로쉬는 그들이 극장을 자기들끼리만 쓸 수 있도록 오전 6시에 특별 상영을 마련하곤 했다. 바바와 함께 영화 보러 가는 일은 골칫거리였는데, 모두가 오전 5시까지 출발할 준비를 마쳐야 했기 때문이다. 메헤라바드의 여성 만달리 외에도 아흐메드나가르의 다른 여성들이 초대되었는데, 악바르 프레스의 사타와 다마니아 집안 여성들, 코킬라, 루스톰 카카의 아내 실라 카쿠, 굴마이와 그녀의 딸 피로자, 사로쉬의 아내 빌루, 고허의 어머니 코르셰드 등이 그에 포함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