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꾸러미를 하나씩 건네줄 때는, 그 목적을 위해 비워 둔 별도의 방에서 철저히 비공개로 했다. 바바는 바닥에 앉아 마을 사람들을 한 사람씩 손짓으로 불러 프라사드를 주었다. 접촉이 이루어지는 동안 아무도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도록, 두꺼운 커튼을 창문에 못질해 고정하고 문에도 드리워 두었다. 프로그램은 오후 1시에 끝났고, 바바는 아흐메드나가르로 돌아왔다.
이틀 뒤인 18일, 바바는 아흐메드나가르에서 서쪽으로 25마일 떨어진 파르너 마을로 갔다. 여기서는 프로그램이 학교 건물에서 열렸다. 바바는 가난한 사람 600명의 발을 씻기고 606명에게 프라사드를 나누어 주었다. 그는 28명에게는 1루피씩 주었고, 한 남자에게는 2루피를 주었다.
바바가 파르너 출신의 한 노파의 발을 씻기고 있을 때, 한 노인이 영어로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꼭 예수 그리스도 같군!"
세 번째 가난한 사람 대상 프로그램은 1948년 2월 20일 금요일, 아흐메드나가르에서 남동쪽으로 70마일 떨어진 카르다 마을에서 열렸다. 그곳에서도 992명의 가난한 마을 사람들과의 작업을 위해 학교 건물이 사용되었다. 바바는 다시 그들의 발을 씻기고 각자에게 프라사드를 따로 건네주었다. 그는 또한 98명에게는 1루피씩, 13명에게는 2루피씩 주었다. 만달리는 저마다 맡은 일을 도왔고, 카이코바드가 접촉 수를 기록했다.
네 번째이자 마지막 프로그램은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그것은 2월 22일 일요일 비사푸르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비사푸르는 옛 군부대 주둔지였다. 파키스탄과 인도가 분할된 뒤 종파 폭동이 일어나 수천 명의 삶이 무너지고 수십만 명의 난민이 이 나라로 밀려들었다. 비사푸르는 난민 수용소로 바뀌었고, 바바가 그날 함께 작업하기 원했던 대상은 바로 이 가난한 난민 1,000명이었다.1
바바는 이른 아침 아흐메드나가르를 떠나 남쪽으로 25마일 떨어진 비사푸르 관개 방갈로까지 차로 갔다. 그가 도착했을 때, 난민들이 어떻게 해서인지 "성자"가 자기들의 발을 씻으러 온다는 사실을 알아냈다는 말을 들었다. 난민들은 그 생각을 달가워하지 않았고 이렇게 항의했다. "우리가 그분의 발을 씻겠습니다. 그분이 우리 발을 씻는 것은 절대로 허락하지 않겠습니다."
바바가 과거에 그런 일을 했을 때마다, 받는 사람들은 누가 자기들의 발을 씻기고 프라사드를 주는지 알지 못했다. 바바는 그 난민들의 태도를 전해 듣고 안타깝게도 프로그램을 취소하기로 결정한 뒤 아흐메드나가르로 돌아왔다.
각주
- 1.1925년에 바바는 메헤라바드 학교 아이들을 비사푸르로 소풍 데려간 적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