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4월 18일, 인근 마을의 가난한 사람 18명이 언덕 위로 데려와졌다. 바바는 각 사람의 발을 씻기고 그들에게 절한 뒤, 한 사람씩 10루피를 건네주었다.
푸란다르 언덕에서 바바가 은둔하는 동안 날씨는 몹시 험악했다. 바바의 은둔과 때를 같이해 인도 서해안을 강타하던 사이클론 때문에, 거센 바람과 함께 비가 끊임없이 내렸다. 19일 정오, 바바는 만달리와 머스트 알리 샤, 그리고 두 소년과 함께 푸란다르를 떠나 우드타라(사타라 근처)로 갔고, 그곳의 다크 방갈로에서 하룻밤 묵었다.1 사로쉬, 람주, 아디 시니어가 메흘루와 팔루의 장래 계획을 바바와 상의하려고 그곳에 왔다.
다음 날 사로쉬가 사타라에서 둔 코티지를 빌렸고, 바바와 모두가 그곳으로 옮겼다. 둔 코티지에 머문 닷새 동안, 바바는 시바지의 요새 가운데 하나인 아진키야 타라를 두 차례 찾아 알리 샤와 함께 작업했다. 바바는 그 지역의 또 다른 시바지 관련 요새도 방문해, 그곳에서 다시 알리 샤와 함께 은둔했다.
4월 24일에는 파드리를 메헤라바드에서 불러오고 펜두는 돌려보냈다. 바바가 알리 샤와 작업할 때마다 파드리, 바이둘, 에루치가 엄중히 경계를 섰다.
이틀 뒤인 26일, 바바와 일행은 사타라를 떠나 마하발레쉬와르로 갔고, 그곳에서 바바는 머스트 작업을 재개했다. 바이둘은 밖으로 나가 머스트들을 찾아 아가 칸 궁전으로 데려왔고, 바바는 그곳에서 그들과 작업했다.
30일에 아디 시니어가 푸나에서 특별히 마련된 버스를 타고 바바를 만나러 왔다. 그와 함께 제사왈라 가족이 있었고, 봄베이에서는 나리만, 카카 바리아, 알리 악바르(알로바)도 왔다. 제사왈라 가족을 제외한 모두가 그날 돌아갔다.
1947년 5월 6일 화요일, 바바는 이번에는 메헤라, 마니, 메헤루와 함께 다시 푸란다르로 갔다. 돈과 파파가 그들과 동행했고, 에루치와 닐루도 나중에 도착했으며, 에루치의 자매들과 가이마이도 왔다. 바바는 여성들에게 푸란다르 요새와 자신이 은둔했던 장소를 보여 주었다. 그는 8일에 마하발레쉬와르로 돌아왔다.
이틀 뒤인 10일, 아디 시니어가 비슈누, 닐루, 에루치, 잘바이, 그리고 그의 조카 굴나르와 함께 마하발레쉬와르로 불려왔다. 5월 11일 일요일 점심 후, 바바는 머스트 작업을 위해 아디, 에루치, 잘바이와 함께 다시 차로 떠났다. 그는 사타라, 콜하푸르, 벨가움, 니파니와 다른 마을들을 방문했고, 가는 곳마다 여러 머스트들을 접촉했다.
각주
- 1.우드타라는 9년 뒤인 1956년에 바바가 자동차 사고로 크게 다친 곳이다.
